스티브 마빈 도이치증권 전무는 스스로 '한국증시의 유일한 비관론자'라고 부른다. 한국경제나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아직도 취약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주가가 오른 것도 실력보다는 전적으로 미국의 유동성(투자자금)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한국증시에 대해 비관론을 폈는데 결과적으로 틀렸다.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해 6월 주가전망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매수'로 투자의견을 바꿨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취약하고 주식시장이 고평가돼 있다는 입장은 변함없다. 경기가 악화되면 주가가 떨어지는 게 정상인데 지난해는 달랐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시장으로 밀려들어온 미국계 투자자금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시장에서 외국인들이 순매도를 기록했지만 주식을 판 것은 대부분 유럽계 투자자나 헤지펀드였다. 미국투자자들은 순매수했다. 코스피지수가 상승기에 접어든 2003년 9월 이후 미국투자자들은 월기준으로 단 여섯 번만 순매도를 했는데 그때마다 코스피지수는 조정을 받았다." -올해 한국경제와 증시 전망은. "미국의 유동성 랠리가 지속된다는 최상의 시나리오에선 지수가 올해 말 2000포인트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소비둔화나 급격한 인플레이션 등으로 유동성이 빠르게 위축된다면 1000 밑으로도 떨어질 수 있다. 국내 경기와 기업실적이 양호하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의 시장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 않은가. "저축에서 투자로의 본격적인 자산 재분배는 일어나고 있지 않다. 투신사로 들어오는 돈의 대부분은 은행 예금 쪽에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투신사 내부의 머니마켓펀드(MMF)나 채권형 펀드 쪽에서 옮겨오는 것이다. 지난해 채권형 펀드와 MMF에서 빠져나간 돈이 12조원에 이른다. 은행권 예금은 오히려 증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이익의 질이 높아졌고 이것이 증시 재평가의 근간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재평가라는 의미가 기업의 이익감소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식이 비싸졌다는 의미라면 한국은 확실히 재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기업이 '튼튼해졌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체들은 부채감소 등 재무구조 개선에만 초점을 맞췄지 영업활동 측면에선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외환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원자재값 인상,판매단가 인하,인건비 상승 등이 겹치자 제조업체들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 지난해 3분기까지 금융회사를 제외한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3.5%나 줄었다. 미국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원화강세(달러당 950원 전망)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올해 기업이익이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중소기업은 더 힘들 것이다. 경영환경이 악화되면 기업들은 영업활동 중심의 2차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는 실업과 경기침체 등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할 것이다." -내수는 살아나고 있지 않은가. "구매력 저하압력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과연 장밋빛 결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제조업체에선 4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연말 보너스가 크게 줄어들고 전반적인 임금수준도 낮아졌다.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소득은 줄었는데 세금은 노무현 정부 들어와서 폭증했다. 가계의 금융 부채가 늘면서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부담도 커지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소비에 우호적인 것이 없다. 그런데도 소비심리는 개선되고 있어 의아하다. 그동안 증시가 활황세를 보여 심리적인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생각된다. 고용과 임금상황이 계속 악화된다면 내수회복도 한계가 있다." -유동성 장세에선 어떤 주식을 사야 하나. "기술주나 내구소비재(자동차) 등 시장대비 변동성이 큰 종목과 자산주가 유망하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든 유동성 장세가 끝나면 주식은 폭락할 것이다. 또한 금리가 오르는 만큼 배당주 투자는 피해야 한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