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공의 인권, 민간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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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 딜로이트투쉬 파트너 >
1월은 회사마다 신입사원들의 연수가 한창일 때이다. 지난 해 취업시즌에는 민간기업보다 공공부문에 대한 선호도가 절대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근무하던 소위 '잘 나가는 직장인'들조차도 대거 공공부문에 입사원서를 제출했다는 후문이다.
내 주변에도 '불안한 민간기업을 떠나 안정적인 공공부문'으로 옮겨가는 젊은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젊은이들에게 공공부문 취업은 수익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조건을 따져가며 공공부문에 취업하는 것은 물론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이것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합리적인 보상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인권'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앞세워 이러한 왜곡현상을 더욱 확대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600여개 상장사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2005년 기준으로 8년정도이다. 평균 취업연령이 28세임을 감안하면 대략 12년 정도 근무한 뒤 직장을 떠나는 셈이어서 사오정(45세 정년)을 뛰어넘어 삼팔선(38세 퇴직) 수준으로 고용안정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KT&G 한국전력 등 주요 공기업은 평균 근속연수가 18년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공무원의 정년은 5급 이상 60세, 6급 이하 57세로 규정돼 있는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를 차별로 규정하고 60세로 동일하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 공공부문은 안정성에다 수익성까지 높아지면서 이제 철밥통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지경이다. 민간부문이 사활을 건 구조조정을 할 때, 공공부문은 청년실업 해소까지 내세우면서 오히려 몸집을 불리고 있고, 연금 등 평생소득을 감안하지 않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올려온 급여와 수당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이점은 갈수록 커진다. 공공부문에 계신 분들도 나름대로 할 말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직장을 찾는 젊은 세대들은 영리하다. 졸업생은 물론 멀쩡히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조차 공공부문에 취업하려 애쓰는 것이 바로 방증이다. 이제 공공부문 취업은 '인생에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모두 잡는 최고의 선택'이 되고 있다. 반면 민간기업은 '안정성은 아예 포기하고, 운 좋으면 수익성을 기대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또다시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참여 허용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엄숙하게 권고했다. 관념적 당위성에 빠져 인간이 살아가는 다면적 현실을 간과한 것으로, 우리 사회의 합리적 보상구조 왜곡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밖에 없는 단선적인 시각이라고 해석된다.
경제적 문제란 결국 안정성과 수익성 간의 선택이다. 안정성과 수익성의 동시극대화는 최적이지만, 현실에서 두 조건은 서로 대체관계(Trade off)에 있다. 직업선택도 예외는 아니다. 개별 취업희망자는 근본적으로 안정성과 수익성이라는 효용함수 속에 있다. 만약 특별한 능력이 필요없음에도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일자리를 얻는다면,개인에게는 행운이겠지만 사회 전체로는 경제적 보상구조가 왜곡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사람의 인권이 중요하다면 민간부문 샐러리맨의 인권 역시 중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기관이 보편적 개념인 인권을 구체적인 특정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러나 때때로 인간은 '스스로 돕는 자가 아니라 목소리 큰 사람을 돕는 제도'를 도입해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사회를 퇴보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