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벌인 미국 뉴욕시 대중교통노조(TWC)의 지하철·버스파업에 대해 뉴욕시가 법을 위반했다며 노조에 벌금을 부과하자 파업을 밥먹듯 벌여온 우리나라 노동계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민주주의가 발달돼 있고 인권이 잘 보장돼 있다는 나라에서 어떻게 대중교통 파업이 위법행위로 제한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뉴욕시는 지난 1966년 이른바 '테일러법'을 제정해 공공기관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보다 공중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25년 만에 파업을 벌인 TWC는 법을 어긴 대가로 결국 엄청난 경제적 타격만 입고 파업 3일 만에 백기투항해야 했다. 뉴욕 대중교통노조의 파업 사태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는 인권위원회가 철도를 포함한 필수공익사업장의 직권중재제도 폐지와 함께 '동일노동동일임금' 적용 등을 정부에 권고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직권중재 폐지안은 현재 금지된 공공사업장의 파업권을 보장해주자는 게 골자이다. 어쩌다 한번씩 파업이 벌어지는 미국에서는 시민들이 생활에 지장을 받을까봐 공공노조의 파업을 제한하고 있는데 반해 '파업공화국' 한국에서는 오히려 파업을 벌이도록 멍석을 깔아 주고 있는 것이다. 인권위의 직권중재 폐지안은 정부의 노사 로드맵에 담겨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당·정 간 합의가 미뤄진 상태이다. 그런데 인권위는 마치 파업권을 확대해 주는 게 인권을 보장해주는 것인 양 착각하며 이를 관련법에 반영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인권위의 '무지'와 '월권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정규직보호방안과 관련해선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적용할 것을 정부에 권고해 재계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이 원칙을 법에 명시한 나라는 선진국들 중에서도 프랑스가 유일하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일의 성격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급 임금체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연공급 임금체계(근무연수와 서열에 따라 달라지는 임금체계)를 도입하고 있는 한국 기업보다는 동일임금을 채택하기가 용이하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는 남성과 여성의 임금차별을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동일임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법으로 명문화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그런데도 인권위는 해당 부처에 이를 도입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인권위의 권고가 받아들여진다면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게 뻔하다. 비정규직 임금을 일시에 인상해주고 많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자금압박을 이기지 못해 망하는 기업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고용시장은 대혼란에 빠지고 길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나게 된다. 노동계가 이 조항을 관철시키려 하기 보다 협상용 카드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앞뒤 사정을 모르는 인권위는 인권보호를 이유로 덜컥 권고안으로 채택한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