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8 15:34
수정2006.04.08 19:38
환단고기(桓檀古記)는 환인ㆍ환웅에서부터 고조선을 거쳐 부여까지 수천년 동안의 우리 고대 비사(秘史)를 총정리해 놓은 역사책이다.
이 책에 보면 BC 1987년 고조선 우서한 임금 때 "세 발 달린 까마귀가 대궐로 날아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소위 삼족오(三足烏)라 일컫는 이 새는 네(四)방위를 상징하는 주작 현무 백호 청룡과 함께 고구려 벽화 곳곳에 나타난다.
머리에는 뿔도 달려 있다.
중국의 역사책에는 삼족오에 대한 기록이 수없이 많다.
세 발 달린 까마귀 설화는 전한(前漢)시대에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당시의 책인 '춘추원명포'에는 태양이 양(陽)이고 3이라는 숫자가 양수(陽數)여서 태양에 사는 까마귀의 발이 3개라고 풀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태양 속에 까마귀가 산다고 믿었을까.
태양이 하늘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곳이기에 조류를 생각했던 것 같고,해를 보면 흑점이 있기에 까마귀를 상상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학자들은 이집트의 벽화에 나오는 새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사람들은 새를 하늘과 땅을 오가는 영물로 여겼고,해를 움직이는 존재로 믿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삼족오 논란이 불거졌다.
손잡이에 금이 간 국새(國璽)를 교체하면서 그 손잡이를 삼족오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까마귀는 고대 벽화는 물론 신라시대의 관품에도 까마귀 오(烏)자가 들어간 이름이 많아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새라는 게 지지하는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중국에서 삼족오를 더욱 신성시하고 있는데다,일본 축구협회가 1930년대부터 삼족오를 엠블럼으로 사용하고 있어서다.
국새는 나라를 대표하는 도장이어서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는 않다.
과거 국새에 사용된 용이나 거북,봉황을 채택할 때도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쪽의 우격다짐이 아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