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나 글로나 수다를 떨지 말 일,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제 잘한 일을 입 밖에 내거나 붓끝에 올리지 말 일,남의 잘못,학설의 그릇됨을 탓하지 말고 제 바른 행동과 깊은 공부로 휩싸버릴 것,약속을 삼가고 일단 승낙한 일은 성실히 이행할 것,사소한 일이라도 먼 앞날을 헤아리고 인생의 깊은 뜻을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할 것.' 사학자 김성칠씨(1913∼51)의 1950년 '새해의 맹세'다. 50여년 전 학자의 맹세와는 달라도 해가 바뀌면 누구나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술을 덜 마신다''뱃살을 뺀다''영어공부를 열심히 한다''담배를 끊는다''돈을 모은다'등.기독교인 같으면 '새벽기도를 한다''매일 성경을 읽겠다'는 목표도 세운다. 직장인들의 새해 결심을 물었더니 첫째가 '자기 계발'이고,다음이 금연 재테크 다이어트 금주 순이었다고 한다. 50대에 이력서 쓰고,60대에 영어회화 공부하고,70대에 골프레슨 받으면 '미친 넘'이라는 우스갯소리는 뒤집으면 자기 계발을 위해 그렇게 애쓰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어쨌거나 덕분에 연초만 되면 '작심 상품'들이 인기를 끈다. 건강숯파이프 금연시계 등 금연보조제와 함께 다이어트 신발과 컵,요가 비디오,유산소 운동기구,디지털 줄넘기 등 온갖 체중조절 제품이 쏟아진다. 영어 테이프를 비롯한 각종 어학 학습기와 온라인 강좌,헬스클럽도 작심 특수를 누린다. 그러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게 인간이라던가. 작심 3일은커녕 하루도 못가 무너지는 결심이 수두룩하다. "내일부터 꼭 하지" 하다 보면 내일이 모레가 되고 모레가 글피가 된다. 애써 사들인 물건이 얼마 못가 처치 곤란한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일도 허다하다. 이유는 많다. 열 받아서 피우고, 피곤해서 쉬고, 바빠서 빼먹고. 물건을 사고 학원에 등록하는 건 어디까지나 작심의 방편이다. "돈을 들이면 아까워서라도 하겠지"라는.그러나 새해의 맹세를 실천하는 힘은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에 달렸다. 정치권에서 앞다퉈 내놓는 사자성어가 작심상품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