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연령 제한도 없다.


자본 없이 맨몸으로 뛰어들 수 있는 직업.그런데도 잘만 하면 억대 연봉을 벌 수 있다.


얼핏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이보다 어려운 일도 없다.


능력은 나이 순이 아니어서 20~50대까지 천차만별이다.


백화점 의류매장을 관리하는 '숍 매니저(shop manager)'.'매출=인격'이란 등식이 굳어진 백화점 업계에서 매출을 끌어올리는 일등공신인 이들은 높은 인격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수백여명의 잘나가는 백화점 숍 매니저 가운데 전국 매출 1위 매장이란 뛰어난 성과를 올려 '베스트 숍 매니저'의 영광을 차지한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이들 대부분은 20평 안팎의 백화점 매장에서 연간 20억~5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다스의 손,숍 매니저


숍 매니저란 고객에게 단순한 상품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나아가 코디네이터 역할도 하는 매장 지배인이다.


최근에는 디자인 회의까지 참석,새로운 디자인 개발에도 영향력을 미친다.


이들의 판매 노하우와 서비스에 따라 백화점의 매출은 춤을 추게 마련이다.


1등 매장을 수년간 이끌고 있는 숍 매니저는 '카리스마 점장'으로도 불린다.


백화점 영업팀장들은 "숍 매니저야말로 수천가지 등급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고객의 체형과 어울리는 디자인 및 색상,어느 정도의 가격대를 선호하는지 등을 한눈에 알아보는 '동물적 감각'은 하루아침에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최경희 롯데백화점 본점 여성의류 타임 숍 매니저(37)는 "고객 관리와 패션 조언자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상품량 조절과 인력 관리 등을 무리없이 해나가야 하는 숍 매니저는 그야말로 종합예술가"라고 말했다.


숍 매니저가 되기 위해선 매장에 들어가 '큰 언니'(숍 매니저) 밑에서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다 능력에 따라 짧게는 몇개월,길게는 10년 만에 숍 매니저 자리를 오르게 된다.


◆톱 매니저는 대형 매장에서 나온다


지난달 말 현재 롯데 현대 신세계 갤러리아 등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여성·남성의류,스포츠,아웃도어,유아복,화장품 등 6개 분야 20개 대표 브랜드의 매장별 매출을 분석한 결과 롯데가 16명,신세계 2명,현대와 갤러리아가 1명씩의 톱 매니저를 배출했다.


롯데백화점은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덕에 전 브랜드에 걸쳐 두각을 나타냈다.


20개 브랜드 중 80%인 16명의 숍 매니저가 각 브랜드의 매출 1위 매장을 일궈냈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의 선전에 힘입어 푸마와 아디다스 등 스포츠의류에서 2명의 톱 매니저를 배출했다.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은 각각 1개 브랜드 매장이 국내 최고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들 두 백화점은 압구정동이라는 지역 특성상 프랑스제 속옷 '바바라' 등 강남권에서만 유독 강한 브랜드를 다수 보유,패션리더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도 모르는 억대 연봉


숍 매니저들의 하루 일과는 고객과의 통화로 시작된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 배출한 유일한 톱 매니저인 김신덕씨(41)는 "고객의 취향과 각종 기념일을 챙기는 건 기본"이라며 넌지시 보여준 그의 'X파일'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300여명의 고객 명단과 신상 정보가 적혀 있었다.


김씨는 "고객이 잊고 지나기 쉬운 집안의 대소사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뿌린 만큼 거둘 수 있어' 경조사비로만 한달에 150만~200만원가량 나간다고 김씨는 말한다.


숍 매니저는 각 패션업체들이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월급제 매니저'와 매장 관리 비용은 본사에서 지원하고 매출액의 3~4%를 받는 '수수료 매니저',매장 관리부터 직원 월급까지 본인이 모두 책임지면서 매출액의 7~10%까지 가져갈 수 있는 '중간관리 매니저'로 나뉜다.


중간관리 매니저는 사실상 소사장인 셈이다.


톱 매니저들은 대부분 중간관리 매니저거나 수수료 매니저로 구체적인 액수 공개를 꺼리지만 최소한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번다는 게 정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과에 대한 격려와 경쟁업체의 스카우트를 막기 위해 두둑한 연말 특별보너스도 덤으로 받는다.


억대 연봉을 받는 롯데백화점의 한 매니저는 "남편도 월 200만~300만원 월급을 받는 정규직 사원으로 알고 있다"며 가족에게는 비밀로 한다고 말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