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자리를 사임하고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안철수씨(43)가 25일 한국경제신문과 국제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안씨는 현재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직만 유지한 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의도 듣고 벤처기업에서 틈틈이 일도 하고 있다.


안 의장은 "귀국 후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면서 안철수연구소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주주로서 역할만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안철수연구소 대표 시절 "한국에서는 빌 게이츠라도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며 정부의 정책 부재를 비판하곤 했던 그는 이번엔 전자정부 프로젝트에 대해 "전자정부 사업을 왜 추진하는지 정부가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일침을 가했다.


다음은 안 의장과의 일문일답.


-미국에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시애틀에 있다가 아내가 스탠퍼드 로스쿨에 연구원으로 가게 돼 이곳(캘리포니아 팰러앨토)으로 옮겨왔다.


요즘엔 공부보다 가족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예전에는 가족과 떨어져 펜실베이니아에서 공부도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


내년 9월 스탠퍼드나 와튼스쿨의 최고경영자 경영학석사 과정에 입학할 예정이다.


스탠퍼드에서 생명의료정보학 강의를 듣고 많은 시간을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보내고 있다.


이곳의 한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상주 기업가(EIR)로 일하고 있다."


-벤처캐피털 회사에는 왜 나가는가.


"만 10년 벤처기업을 경영하면서 '왜 한국에서는 벤처 성공 확률이 낮을까'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벤처기업가의 지식과 자질이 부족하거나 시장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거나 조언을 해주고 돈을 대주는 도움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야 내가 어쩔 수 없지만 기업가의 지식을 보충해주고 조언하는 일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벤처캐피털이 벤처기업을 어떻게 도우는지 보고 배우려고 한다.


미국 벤처기업인들의 생각도 직접 접해볼 수 있어 좋다."


-공부 방향이 바뀐 것 같은데….


"여러가지를 염두에 두고 와서 그런 것 같다.


한국을 떠날 땐 미국에서 기업가정신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지금 생명의료정보학을 수강하고 있다.


학위를 더 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고 한국에 돌아가 공헌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있다."


-안철수연구소로 복귀할 생각은 있는가.


"현재로선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되도록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대학 교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


여기 벤처캐피털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한국에서 활용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대학교수를 하면서 직접 창업을 하거나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안철수연구소에서 손을 뗀다는 얘긴가.


"벤처기업이 잘 되기 위해서는 소유와 경영이 적절히 분배되고 서로 감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한국에서 오너경영이 문제가 됐다면 미국은 전문경영인의 모럴해저드가 문제가 됐다.


두 나라에서 문제의 발단은 달랐지만 결국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 둘의 조화와 감시라는 쪽으로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안철수연구소 경영은 되도록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나는 감시자인 주주로 남을 생각이다."


-최근 한국 전자정부 시스템의 보안이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문제가 됐는데….


"그 문제는 이미 2년 전 정부와 보안업체 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제기했던 것이다.


그때 '미국만큼은 못해도 그 절반은 보안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전자정부 시스템의 보안 취약점도 지적했다.


정부측도 수긍을 했는데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사실 보안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전자정부를 왜 추진하는지'에 대해 정부가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왜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하는가.


단지 편리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ERP 도입을 계기로 불필요한 업무 관행을 개선하고 조직을 재정비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전자정부도 마찬가지다."


-외국계 보안업체들의 한국 공략이 거세다.


"당연한 과정이고 외국계 입장에서 보면 타이밍이 적절하다.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정부와 기업의 정보기술(IT) 투자에서 보안이 1순위로 꼽힌다.


생산,기술개발,판매 등에 필요한 투자가 끝났기 때문에 보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이런 방향으로 갈 것이다.


외국계 업체들은 미국 유럽 등지에서 돈을 많이 벌고 있어 한국에 투자할 여력이 충분하다.


외국계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국내 보안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안 소프트웨어는 아주 특이하다.


게임이나 교육용 소프트웨어는 몇 년이 지나도 그것을 그대로 쓸 수 있다.


보안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심한 경우 몇 개월만 지나도 쓸 수 없게 된다.


3년 전에 나온 'V3'(안철수연구소의 백신 프로그램)로는 지금 창궐하는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다.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소비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 한번 깔아 놓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우리 보안업체들이 클 수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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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62년생

△1980년 부산고 졸업

△1986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91년 서울대 의학박사

△199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공대 및 와튼스쿨 기술경영학 석사

△1989~1991년 단국대 의대 교수

△1991~1994년 해군 군의관

△1995~2005년 3월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사장

△현재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