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고 지내거나 함께 일해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 언급하는 건 조심스럽다. 그렇긴 해도 직접 만나본 ㈜HJC 홍완기 회장(60)의 모습과 행동은 세련되고 무게를 잡는,이른바 '부자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얼굴과 차림새는 시골 아저씨처럼 소박하고 말은 다소 어눌한 편이다. 그는 지금도 빚은 무섭고,돈을 벌면 좀더 새롭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써야 하고,직원들에게 딴 건 몰라도 집은 장만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믿는,'옛날식'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농사 짓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대학을 중퇴하고 봉제사업부터 시작,오토바이 헬멧 제조에만 총력을 기울여온 까닭이다. 세계 오토바이 헬멧 시장을 석권하게 된 건 출장 외엔 휴가 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이 일만 해온 결과다. 그런 그를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대서특필했다. 번 돈을 연구개발비에 넣고 검소하게 사는 그는 개미,HJC제품 수입 판매로 돈을 벌어 명품자동차를 수집하는 미국 헬멧하우스 사장은 베짱이에 견줬다. 그리곤 한국 등이 무역흑자를 내는 건 이처럼 열심히 일해 수출하고 저축하는 덕,미국이 무역·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건 수입하고 소비하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땅덩이와 생활방식이 다른 두 나라 기업인의 집과 자동차,직원들의 태도로 국가적 문제의 원인을 진단한 건 침소봉대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바탕엔 홍 회장처럼 가난을 극복하고 잘살아보려 허리끈을 졸라맨 채 한눈 안팔고 달려온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홍 회장뿐이랴. 이땅 중장년층은 거의 하나같이 쌀이 모자라 수제비와 칼국수를 먹으며 저축만이 살 길이라고 믿어온 세대들이다. 개미는 바보같고,소비가 미덕이고,집보다 차를 먼저 사는 세대들에게 '개미와 베짱이' 얘기는 설득력이 떨어질 지 모른다. 그래도 어디선가 개미처럼 땀 흘리면서 세계 1등 제품을 만드는 이들이 있어야 후손들이 먹고 산다. "부자라서 좋은 점은 머릿속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홍 회장의 얘기는 실로 시사하는 바 크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