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나 다니는 '바람길'이 아파트 단지를 바꾸고 있다.


바람이 답답한 고밀도 아파트 단지에 막혀 도시의 온도가 오르는 '열섬 현상'이 가속화되고 대기 오염이 심화한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면서 바람길을 살리는 방향으로 아파트 단지 배치 등을 바꿔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제까지 일률적으로 아파트 단지를 가급적 남향에 일렬횡대식으로 배치해 왔던 개발 방식과 설계가 혁명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건설교통부도 바람길의 필요성을 인식,이미 지난 4월 신도시 계획 기준에 바람길·물길 등을 고려한 개발 계획을 반영한 상태다. 이에 따라 내년 3월부터 분양되는 판교 아파트는 바람길이 적용되는 신도시로 지어질 전망이다.


실제로 공공 개발로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에는 이 같은 건축 방식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SH공사(옛 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세운 상암 지구의 경우 설계 단계에서부터 한강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길을 확보하기 위해 아파트를 고층(15~20층)으로 짓고 동과 동 사이도 넓혔다.



◆신도시에 바람길 열린다


건설교통부가 지난 4월 내놓은 신도시 계획 기준에는 바람길·물길 등을 고려한 생태친화적 도시개발 계획이 구체화되어 있다.


이 계획은 바람길을 열기 위해 △경사도 30 이상인 곳과 녹지자연도 8등급 이상인 곳,생태자연도 1등급인 토지는 절대 보존하고 △100만평 이상 신도시는 24%,200만평 이상은 26%,300만평 이상은 28%의 녹지를 각각 확보하도록 했다.


이 기준은 택지개발촉진법과 기업도시개발특별법에 의해 추진되는 330만㎡ 이상 규모의 개발 사업에 적용되며 규모가 이보다 작은 사업에도 이 기준을 준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일률적으로 산을 깎아내 남향에 일렬횡대 형식으로 아파트를 배치하던 단지 설계도 앞으로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대신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와 같이 바닥 면적이 좁고 높은 형태의 건축물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바람이 지나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같은 용적률로 짓더라도 건폐율을 낮춰 녹지를 많이 확보하고 동 간격을 넓히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동 아이파크는 건폐율이 10%에 불과해 나머지 90%를 녹지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강변 아파트 층수제한 풀어야


앞으로는 구릉지에 아파트가 난립하는 일도 줄어들 전망이다.


시원한 바람이 도시로 유입되도록 하기 위해 경사도 30 이상인 곳은 절대 보존,경사도 20 이상인 곳은 상대 보존 지역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김운수 박사는 "5ha 이상의 구릉지는 그 일대 기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서 "도시의 열섬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이런 곳은 개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굳이 개발해야 한다면 건물을 일렬종대 형식으로 배치해 바람을 막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 한강과 인접한 아파트 단지들의 층고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쾌적한 환경 조성을 위해서 층고를 높이는 게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값이 뛸까봐 층고 제한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김 박사는 "바람길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층고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보다 해당 지역의 특수성에 맞게 다양한 층수를 적용하는 것이 좋다"면서 "어차피 개발해야 하는 지역이라면 좁고 높은 형태의 건축물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