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분기(4.7%)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특히 계절적인 요인을 감안한 전 분기 대비 실질 GDP 증가율,즉 경제성장률은 1.8%로 2003년 4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표상으로는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경기 회복이 실감나지 않는다"는 게 서민들의 반응이다. "나라 경제는 좋아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국민 생활은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는 푸념까지 들린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는 이렇듯 다르다. 체감경기(體感景氣)란 말 그대로 피부로 느끼는 경기다. 우리나라 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엄밀하고 과학적으로 조사 집계된 경제지표가 반영하는 지표경기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체감경기는 머리로 분석되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다. 지표경기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수행하는 경제활동의 평균적인 흐름을 말한다. 반면 체감경기는 경제주체들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경기다. 따라서 실제 경제상황과 무관하게 당시의 사회 분위기,언론 보도 등의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체감경기는 '누가 느끼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대형 할인매장 직원이 느끼는 경기와 구멍가게 주인이 느끼는 경기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경쟁력 면에서 열세인 구멍가게들은 전반적인 경기가 좋아져도 그 혜택을 많이 입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랫목은 할인매장에 내주고 웬만큼 불을 때지 않고서는 온기를 느끼기 힘든 윗목으로 밀려난 처지다. 이런 점에서 서민들 체감경기는 제조업 경기보다는 서비스업 경기에 따라 좌우되는 측면이 있다. 올 3분기 경제성장률을 부문별로 보면, 제조업이 7%로 높게 나타난 반면 서비스업은 3.3%에 그쳤다. 그런데 제조업 종사자 수는 2003년 말 기준 전체의 11.6%에 불과한 반면 서비스업 종사자 비율은 35.6%에 이른다. 종사자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서비스업 경기가 부진한 것이 체감경기와 지표경기 간 현격한 차이를 낳는 요인이다. 이 같은 수출-내수 간 양극화 이외에 소득 양극화도 체감경기의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체감경기와 지표경기 사이에는 시차가 있다. 체감경기는 경제주체들이 생산 또는 소비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GDP 같은 경제지표는 조사 시점 1~3개월 후에 집계돼 발표된다. 조사 시점과 발표 시점의 차이는 때때로 지표경기가 체감경기와 어긋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표경기가 회사원이나 근로자로서 느끼는 경기라면 체감경기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느끼는 경기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장사를 잘해 GDP가 크게 증가하더라도 정작 내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적어지거나 내가 받은 월급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체감경기는 나빠진다. GDP 통계나 산업활동동향 등의 경제지표들이 생산 또는 출하 단계에서 집계된다면 체감경기는 소득 또는 지출 측면에서 측정된다고 할 수 있다. 올 3분기 실질 국내총소득(GDI) 증가율은 0.2%에 그쳤다. 5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GDI는 GDP에다 수출 및 수입 가격의 변화까지 감안한 개념으로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구매력을 보여준다. 수출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고 수입제품의 가격이 올라간다면, 다시 말해 교역조건이 악화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소비 또는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은 그만큼 줄어든다. 예컨대 전에는 자동차 100대를 수출해 원유 2만5000배럴을 수입해왔다고 치자.유가가 급등해 이제 자동차 100대보다 훨씬 많이 팔아야 같은 양의 원유를 들여올 수 있다면 구매력 측면에서 우리 국민들의 소득은 그만큼 줄어든 결과를 가져온다. 주관적이고 엄밀하지 못하다고 해서 체감경기를 무시하는 것은 단견이다. 경제주체들이 체감경기에 바탕을 두고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경기는 양호한데도 체감경기가 지속적으로 나빠지면 뜻하지 않은 경기 부진을 빚을 수도 있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구멍가게처럼 구조적으로 열세에 있는 부문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정치 사회적 불확실성 요인을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분석그룹 윤상하 연구원 shyoon@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