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20일 현대와 맺은 경협합의서를 무시할수도 있는 듯한 입장을 밝힘에 따라 합의서의 효력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대측은 2000년 8월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체결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따라 개성관광 독점권을 주장해 왔으나 북측이 이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 담화에서 합의서에 구속될 필요가 없게 됐다고 밝혔다. 현대측은 경협사업에 대한 30년 독점권을 갖는 대가로 5억달러를 지불했다며 합의서 폐기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북측의 태도가 강경해 귀추가 주목된다. ◇ 7개 경협합의서의 내용은 현대아산측에 따르면 경협합의서에 명시된 7대사업은 ▲남북 철도연결 ▲통신사업 ▲전력이용 ▲통천 비행장 건설 ▲금강산 저수지의 물 이용 ▲관광명승지 종합개발 ▲임진강댐 건설 등이다. 이중 관광명승지 종합개발에 백두산, 묘향산 등과 함께 개성이 명시돼 있다. 경협합의서에 담긴 사업중 현재 진척이 있는 것은 남북철도연결 사업 정도로 관광사업을 빼면 나머지는 거의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대측은 합의서를 공개하라는 요구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와 세간에 내용이 자세하게 공개되지는 않았다. 독점권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다소 모호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현대의 독점권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특정기업과 북측이 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정부 정책이 거기에 자동 귀속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현대아산과 북측간의 독점계약은 그것대로 유효하며, 현대아산이 그동안 여러가지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여기까지 남북협력사업을 이끌어오고 희생한 데 대해서는 존중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 독점권에 대해 입장 바꾼 북 북측은 지금까지는 `7대사업'에 대해 현대의 독점권을 인정해왔다. 대북송금 문제가 한창이던 2003년 3월 북측 아태는 `상보'를 통해 "우리측은 20 00년 8월22일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에 따라..(중략)..'7대 경제협력사업'으로 일 컫는 대규모 협력사업권을 현대측에 부여하고 그 기간을 30년 이상으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북측 입장은 김윤규 퇴출을 계기로 바뀌었다. 북측은 "7대협력사업합의서는 해당한 법적 절차와 쌍방 당국의 승인을 전제로 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수정보충하거나 다시 협의할 수도 있게 돼 있다"면서 "합의의 주체가 다 없어진 조건에서 구태여 그에 구속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합의서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어 대북관련 시민단체와 대북사업을 준비하는 업계는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남북포럼 김규철 대표는 "인사권이나 경영권에 개입하면서 계약을 무시하겠다는데 이런 위험부담을 안고 누가 대북사업에 참여하겠느냐"고 밝혔다. 대북사업을 준비하는 한 업체는 "대북사업은 어디로 튈 지 몰라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 현대, 독점권 훼손 있을 수 없다 현대측은 당황하면서도 북측의 정확한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아직 공식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7대 경협합의서의 무효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7대합의서에는 이처럼 분쟁이 발생할 때 조정 방법도 명시돼 있다. 분쟁 발생시 쌍방이 협의하에 푸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30일이내에 해결되지 않으면 관계기관 인사를 포함해 남북 각 3명씩이 참여한 조정위원회를 구성, 해결하도록 했다. 이 조정위원회에서도 30일 이내에 해결이 안되면 중국 베이징의 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해야 한다. 또한 지난 2003년 8월 발효된 남북경협 4대 합의서의 상사분쟁해결 조항에 따라 현재 설치가 추진중인 남북상사중재위원회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을 것으로 현대측 은 보고 있다. 현대측은 우선 북측과 빠른 시일내에 만나 대화로 갈등을 푼다는 방침이지만 상당기간 갈등이 지속된다면 법적인 문제를 꺼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5억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을 들여 따낸 독점권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transi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