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의 수상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올해 노벨문학상이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에게 돌아가 국내 문학계에 아쉬움을 남겼다. 임헌영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은 "서구문학이 20세기 후반부터 자아분열의 단계를 넘어 자아의 미세화 현상을 보이는 것에 비해 우리 문학을 비롯한 제3세계 문학은 굳건한 서사구조와 인간의 생생한 정서가 살아 있고, 인류평화를 열망하는 사상이 가득해 노벨문학상에 걸맞은 작품들"이라며 "문학적 연조나 작품으로 볼 때 국내 몇몇 문학가는 세계문학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무엇보다 문학적 기량을 종합적으로 갖췄을 뿐 아니라 국내외에서 명성까지 갖춘 고은 시인이 수상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 회장은 "이번에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된 것은 한국 작가가 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이어서 매우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일본 등의 사례에 비춰볼 때 노벨문학상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이 형성된 뒤 가까운 장래에 수상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에 우리 작가가 수상후보로 거론 된 것은 이미 우리 국력이 엄청나게 신장된 것을 알려주는 것이어서 세계 곳곳에서 타오르고 있는 한류의 확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한국작가의 이름이 수상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시영 시인은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는 고은 시인이 이번에는 언어의 장벽을 넘을 줄 알았는데 수상하지 못해 서운하다"면서 "시(詩)라는 장르가 번역의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몇년 전부터 한국문학번역원 등을 중심으로 우리 문학의 해외번역이 비교적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아직은 정부 당국의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하고, 작가 개인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러 다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서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세계화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도 "일본 등과 비교할 때 우리문학의 해외번역이나 홍보는 크게 미흡하다"면서 "국내 문학인 전체가 우리 문학의 우수성이나 특성을 각자의 힘이 닿는 데까지 외국에 많이 알려야 하며, 문화정책을 맡은 행정가나 관련 종사자들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오에 겐자부로(1994) 등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일본문학을 세계화하는 데 일찌감치 나섰다. 가와바타는 일본 특유의 계절감각과 미의식을, 오에는 '개인적 체험'을 일반화하는 작품을 통해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라섰다. 지역적 특수성이나 개인성을 세계적 보편성을 갖춘 문학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일본은 문학작품을 영화화해 일본문화를 사전에 유포하는 등 일본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1)이 베네치아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고, 고전명작 '겐지이야기'가 1952년 칸 영화제에서 입상하는 등 일본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선행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다도(茶道), 선(禪), 꽃꽂이, 하이쿠 등 일본적 문화의 세계보급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작품의 질높은 번역을 통한 문학작품의 해외보급이야말로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가와바타의 작품은 1935년부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1968년까지 26개 언어로 모두 133종이 번역됐다. 오에의 작품도 1959년부터 1994년까지 19개 언어로 150종이 번역됐다. 30여년이상 꾸준하게 해외에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문학은 1990년대 들어서야 해외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번역의 질을 담보하기 어려워 노벨문학상을 받기에는 아직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외대 송경숙 아랍어과 교수는 '노벨문학상과 한국문학'(도서출판 월인)에서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스웨덴 문화계, 한림원 주변인물 가운데 한국문학 애호가가 나와서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하며 ▲노벨 도서관에 프랑스어, 영어, 스웨덴어 등 한국문학 관련자료를 보내야 하고 ▲한국문학의 세계적 연구자와 변역자를 양성해야 하며 ▲어떤 대학이나 기관을 에이전트로 지정해 집중관리해야 한다고 방안 등을 제시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