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빈 검찰총장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김 총장은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지휘와 관련한 입장을 당초 13일 중 발표하기로 했으나 내부 의견 수렴을 이유로 입장 발표시기를 늦췄다. 김 총장은 출근 때만 해도 이날 중 입장 표명이 가능할 것이라며 내심 모종의 결단을 내린 것처럼 비쳐졌지만 대검 수뇌부회의, 대검 연구관회의 결과 등을 보고받은 후 진퇴의사를 며칠간 유보한 것이다. ◇ 입장표명 유보 배경 = 김 총장이 다시 침묵을 선택한 것은 자리에 연연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은 검찰내에 거의 없다. 총장 사퇴라는 배수진까지 포함한 여러 대응 중 어떤 방안이 검찰의 중립성 확보와 조직의 안정 측면에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김 총장의 입장 표명 유보는 보도자료에서 밝힌 것처럼 이번 파문을 해소할 대응책을 놓고 대검 내에서도 견해차가 극심하게 엇갈려 단일한 의견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천 장관의 지휘권이 발동된 12일 열린 대검 수뇌부 긴급회의에서는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이 위법하거나 명백하게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지휘를 수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조는 김 총장의 출근 직후인 13일 오전 9시20분께 정상명 대검 차장 주재의 고위간부 긴급회의에서도 어느 정도 유지됐고 다만 일선청의 의견을 좀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도 제시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평검사 위주로 구성된 대검 연구관회의에서는 천 장관의 지휘가 적법하긴 하지만 부당하므로 김 총장이 거부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정반대의 강경한 입장이 나와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다. 검찰청법에 나온 장관의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신중하게 행사돼야 하는데 이번 수사지휘는 검찰의 최대가치 중 하나인 정치적 중립을 훼손시키는 행위라는 게 소장파 검사들의 판단이다. 따라서 김 총장 입장에서는 바로 결단을 내리기보다는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면서 일선의 의견을 좀 더 취합하는 것이 결단에 대한 명분을 살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여유를 갖고 의견 취합 과정을 거치면서 검찰 조직의 공감대를 어느 정도 형성해야만 김 총장의 결단시 발생할 검찰내 이견과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총장 어떤 결단 택할까 = 현 상황에서 김종빈 검찰총장이 내릴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네 가지다. 김 총장이 천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고 총장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과 수사지휘를 수용하되 사퇴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또 수사지휘를 거부하면서 총장직을 계속 유지하는 방안과 수사지휘를 거부하고 총장직을 벗어던지는 방안도 확률적으로 가능한 경우의 수다. 그러나 어떤 방안도 대검 고위간부회의와 대검 연구관회의의 결론을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점에 김 총장의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 수사지휘를 수용하면 대검 고위간부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지만 대검 연구관의 입장에 배치되는 결과가 나와 자칫 검찰 내부가 또 한차례 파문에 휩싸일 우려가 있고 총장의 리더십 문제가 제기될 소지도 있다. 수사 지휘를 거부할 경우에는 일선 검찰의 상급기관으로서 가장 긴밀한 협조 관계가 돼야 할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견원지간이 될 수 있고 장관과 총장의 동반사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 지휘의 적절성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는 점도 고민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일본의 `조선의옥(造船疑獄)'(조선업계가 정치권에 뇌물 뿌림) 사건처럼 불합리한 수사지휘가 명백하다면 총장직을 걸고서라도 지휘거부를 할 수 있겠지만 강 교수의 신병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칫 섣부른 결론을 내렸다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어버리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는 뜻으로 검찰 내부의 의견 못지 않게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 검찰 밖의 분위기도 따져볼 필요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김 총장 입장에서는 다양한 토론 과정을 통해 좀더 공감대가 형성되고 여문 의견이 제시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셈이지만 최종 선택은 결국 김 총장 개인의 결단에 남아 있다는 점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김 총장이 너무 숙고할 경우 장고 끝에 악수를 두거나 실기(失期)함으로써 수용이나 불수용, 총장직 유지나 사퇴의 효과가 반감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불구속 지휘를 수용하고 사퇴하되 최종인사권자(대통령)가 반려할 경우 김 총장으로서는 명분도 찾고 지휘력 약화도 막을 수 있지만 결단 시기가 늦춰질 경우 이런 방안이 물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총장이 이미 사퇴의사를 표명한 것 아니냐는 일부 관측에 대해 정상명 대검 차장은 "총장 입에서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사퇴 의사가 나온 적이 한번도 없다"며 정색하고 부인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