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따라 유비쿼터스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무방비로 노출되는 부작용이 뒤따르고 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한국정보문화진흥원ㆍ한국언론학회ㆍ한국방송학회ㆍ한국언론재단과 함께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디지털시대의 프라이버시권'이란 주제 아래 마련하는 국제포럼에는 세계적인 석학과 관계 전문가들이 모여 유비쿼터스시대의 미래를 전망하고 프라이버시권 보호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27일 오전 첫번째로 기조강연에 나선 클리퍼드 크리스티안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기술사회의 위험성은 기계 자체가 아니라 그 저변에 깔린 기계성"이라고 갈파한 뒤 "컴퓨터ㆍ전자음악ㆍDVDㆍCD롬 등 디지털 기술의 광범위한 발달은 세상에 대한 의미 있는 관점을 제공하기보다 오히려 모든 의미가 사라지는 블랙홀을 생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살충제로 암 발생률이 증가하거나 최신 무기로 인해 고래가 멸종하거나 텔레비전이 극도로 폭력적이라 해도 도구를 창안하고 제작한 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기술 자체는 일상생활에서 중립적이지만, 기계가 점차 복잡해짐에 따라 사용법도 엄격해져 일정한 속성을 띠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컴퓨터와 관련된 특정한 기능과 제약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안스 교수는 "이제는 기술을 정적인 것이 아닌 인간의 존재를 성립케 하는 문화적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도구주의 문화 내에서 인간성을 위한 싸움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사적 영역이 침해돼서는 안된다는 일반원칙이 공적 영역에서 관철되기 위해 도구주의적 세계관을 대신할 새로운 모델이 개발돼야 한다"면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인간됨을 위한 자원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클로드 장 베르트랑 프랑스 파리2대 교수는 미디어 윤리를 강화하는 길만이 프라이버시 보호와 언론의 자유라는 두 가지 기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역설했다. 그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대부분이 기업, 정부, 해커, 범죄자 등에 의해 저질러진다 ▲유명인사들은 유명해지기 위해 미디어에 크게 의존하고 때로는 먼저 사생활을 노출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미디어가 가능한 한 법의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등 몇 가지 전제를 든 뒤 미디어 윤리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베르트랑 교수는 "미국 언론인들은 강간 피해 여성의 이름을 공개하는 데 법적으로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지만 윤리가 그러한 행위를 제지하며, 프랑스는 프라이버시와 관련해 가장 엄격한 법제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죽음으로 몬 사건을 막지 못했다"면서 "윤리는 단순하고 신속하고 유연하며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빨리 적응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베르트랑 교수도 미디어 윤리를 개인의 도덕적 양식에 맡겨둘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기본적인 규칙(윤리강령)이 합의를 통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의 상업화와 소유ㆍ집중 등이 가져올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미디어 책임체제를 확립할 적기"라면서 "영국의 '선'과 같은 쓰레기 언론의 문제는 법정에서 다뤄야 하지만 정규 언론인들의 행위가 적절한가 여부는 미디어 윤리를 통해 판단돼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최창섭 서강대 부총장은 인권 차원에서 프라이버시권을 보호할 것을 주장하면서 미디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레이엄 그린리프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각국 프라이버시 정책의 현황과 세계적 추세를 소개했다. 오후의 1부 토론 순서에서는 유의선 이화여대 교수가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프라이버시 침해 양상 비교 분석'이란 제목으로 발표하고 2부에서는 우지숙 서울대 교수가 '디지털시대를 위한 프라이버시권의 재정립'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2부에서 사례 연구 발표에 나설 노회찬 국회의원(민주노동당)은 미리 배포한 원고를 통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통합 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수집한 개인정보를 거래하거나 사이버공간에서 개인정보 추적이 이뤄져 피해를 입는 사례 등을 소개한 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제도들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입법 목적이 효과적으로 달성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통합해 개인정보 보호의 기본적 원칙을 천명하고 독립적인 감독기구를 설치해 실효성 있는 개인정보 보호업무를 수행하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서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이 각각 발의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을 입법화할 것을 제안했다. 28일에는 오스트레일리아ㆍ중국ㆍ인도ㆍ일본ㆍ한국ㆍ말레이시아ㆍ뉴질랜드ㆍ필 리핀ㆍ싱가포르ㆍ태국ㆍ우즈베키스탄의 국가보고서 발표와 정부ㆍ민간ㆍNGOㆍ국제기 구의 역할을 각각 모색하는 그룹 토의가 이뤄지며, 29일 오전에는 권고안을 채택하고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네트워크 창설을 협의한 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