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5위라는 한국 '전자정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행정부의 대표적 인터넷 서비스인 민원서류 발급 서비스가 지난 23일 행정자치부 국정감사장에서 단 3초 만에 뚫린 데 이어 27일에는 사법부의 대표 서비스 인터넷 등기부등본 발급 서비스가 서류 위·변조에 노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달 평균 발급 서류가 2만여건에 달하는 민원 발급 서비스는 인터넷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로그램 하나만 깔면 주민등록등본 등의 위조가 가능하다. 국민 재산권과 관련이 있는 인터넷 등기부등본은 아예 별도 프로그램 없이도 등본을 자신의 PC에 저장한 뒤 내용을 손쉽게 바꿀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 등에서 대출을 다른 사람 명의로 받거나 부동산 소유권자의 이름을 바꿔 근저당을 설정하는 등의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다가 전자정부 서비스의 공신력이 땅에 떨어진 셈이다. ◆취약한 프로젝트 점검 구조가 문제 수천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전자정부 서비스가 초보 수준의 컴퓨터 이용자에게도 쉽게 뚫릴 만큼 허술한 것은 정부 내 IT(정보기술) 전문가 부족,사업단계 평가 시스템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먼저 사업 단계별로 전자정부 프로젝트의 품질 관리가 미흡했다. 인터넷 발급 서비스의 경우 중간 단계에서 점검만 제대로 했다면 해킹 프로그램으로 인한 보안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IT 컨설팅 업체인 솔루션링크의 민상윤 사장은 "결국 사업 중간 중간에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분석하고 철저히 테스트하는 과정이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감리 시스템도 엉망이라는 지적이다. 보통 중소형 IT업체에 감리를 맡기다 보니 시스템 설계 등을 감시하고 분석할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향후 사업도 허점 투성이 내년 시행 예정인 '인터넷 부동산 등기신청'이 대표적으로 위·변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특히 대법원은 최근 벤치마킹을 위해 외국 출장까지 가서 외국의 제도가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관련 입법을 강행하는 등 무리수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부터 인터넷 등기신청 제도가 도입되면 부동산을 사고 팔 때 본인임을 확인하는 인감증명을 따로 첨부할 필요가 없어진다. 공인전자인증서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정보인증 등 정보통신부가 승인한 6개 기관이 공인전자인증서를 발급토록 하고 있으나 대부분 대행업체에 재위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행업체에는 택배회사도 포함돼 있어 수십억대 부동산 거래의 당사자 확인을 택배 직원에게 맡기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업체 간 과당경쟁이 화 키운다 행자부의 인터넷 발급 서비스와 대법원의 인터넷 등기부등본 발급 서비스가 연이어 해킹을 당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스템 보안시장을 분점하고 있는 두 보안회사가 상대방 솔루션의 허점을 찾아내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이라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100여개에 이르는 보안업체의 경쟁과 정부 사업의 저가 발주에서 기인한다. 실제 일부 공공발주 사업의 낙찰가격은 정상가격의 50%를 밑돌기도 한다고 SI(시스템통합)업체의 한 관계자는 밝혔다. 여기에다 3~4단계 재하청이 진행되면서 중소업체의 수익성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철수·김병일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