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가정집 평면도 같은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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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기현의 탐나는 책
우케쓰 <이상한 집>(리드비, 2022)
평면도: 어느 공포 소설가가 고른 상상의 문
우케쓰 <이상한 집>(리드비, 2022)
평면도: 어느 공포 소설가가 고른 상상의 문
내년 1월이면 이사를 간다. 새로운 집이 될 평면도를 내려다보며 우리는 지칠 줄도 모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큰 방과 작은 방이 있는데, 작은 방은 무슨 용도로 쓰면 좋을까? 서재? 옷방? 큰 방에는 침대를 둬야 할까, 두지 말아야 할까? 침대 대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다면 많이 불편할까? 대신 공간을 더 넓게 쓸 수 있을 텐데. 선반도 하나 더 둘 수 있고. 소파는 살까 말까? 소파를 두면 거실이 꽉 차 버리는 것 아니야?
이런 대화 가운데 놓인 평면도는 더 이상 납작하지 않다. 나의 머릿속에서도 너의 머릿속에서도 우리는 평면도 위에 벽을 세우고 침대를 놓았다 빼 보고 책꽂이를 이쪽 벽에 붙였다 저쪽 벽에 붙였다 한다. 평면도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상상의 장치다. 누구나 평면도를 입체로 만들고 그 안에 많은 것들을 채워 넣을 수 있다. 단지 그것을 내려다보는 행위만으로도.
<이상한 집>의 저자 우케쓰는 일본의 호러·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그는 공포소설 <이상한 집>의 바탕이 되었던 영상이 1000만뷰를 돌파하는 등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일본의 부동산 미스터리 등의 제목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다. 소설로 만들어진 <이상한 집>은 3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이상한 집>은 제목 그대로 이상한 집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을 펼치자마자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이것은 어느 집의 평면도다."
다음 장을 넘기면 한 주택의 1층과 2층의 평면도가 수록돼 있다. 이런 안내의 말과 함께.
“당신은 이 집의 이상한 점을 알겠는가. 아마 얼핏 봐서는 아주 흔한 가정집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주의 깊게 구석구석 살펴보면, 집 안 여기저기에서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지리라.”
화자는 독자들에게 1층과 2층의 평면도를 가만히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위화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것이라고. 2층의 아이 방은 지나치게 고립돼 있고 1층의 욕실 오른편에는 왜 있는지 모를 폐쇄된 공간이 존재한다. 화자의 제안대로 두 장의 평면도를 겹쳐 보니 마침내 평범한 가정집이라기엔 이상한 구석들이 고개를 내민다. 우리는 화자가 평면도를 두고 벽을 세우고 숨겨진 통로를 만들고 그것을 또다시 무너트리는 기이한 추론들을 따라가며 함께 그 안으로 진입한다.
진실은 결코 한 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쪽에서 한 발짝 더 내디디면 겨우 한 조각을 더 내어 주는 식으로 진상은 서서히 밝혀진다. 그 과정의 긴박함은 누구에게나 단순히 소설을 읽어 내는 행위 이상으로 생생할 텐데, 그것은 이 공포 소설가가 평면도를 소설로의 입장문이자 내내 전개를 도와줄 장치로 선택한 덕분일 테다. 공포 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법서 <불쾌한 구멍>(시공사, 2023)의 커버에 왜인지 소름이 돋는 구멍이 뽕뽕 뚫려 있는 것이나, 본문 페이지 오른쪽 하단에 서서히 바람이 빠져 가는 인간 얼굴 풍선의 플립 북 이미지를 수록해 둔 것처럼, ‘보통의 책’과는 조금 달라 보일 수 있는 요소를 섞거나 첨가한 책이 그 의도가 적중하였을 때 독자는 내용이 주는 즐거움 이상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내용과 형식, 형태가 한곳을 향해 함께 달려가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의 쾌감. 만드는 사람 역시 그랬을 것만 같은 즐거움의 전이. (<불쾌한 구멍>의 경우 작가에 대한 이해와 이미지가 주는 소름 끼침이 독자를 번갈아 자극한다.)
나는 우케쓰의 책에서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평면도라는 장치가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든든한 조력자처럼 있어 주어 좋았다. 이사 갈 집의 평면도를 바라보며 아직 눈앞에 없는 집을 그려 보던 익숙한 연상법을 나는 <이상한 집>에도 어렵지 않게 적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연상법은 내게 그랬듯,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쉬운 진입로가 되어 줄 것이다.
어느새 평면도가 아닌 입체 디오라마가 된 집 안, 한밤에 수상한 인물이 고요히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손에 무기처럼 보이는 기다란 물건을 쥐고 감춰진 문 안으로 들어가는 그…….
이쯤 되니 바라는 것은 하나. 이사 갈 집의 평면도에서 기묘한 공간을 발견하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럼 그로부터 끝없는 의심과 끔찍한 상상이 피어날 테고, 이사를 기다리는 마음이 하루아침에 영 달라지고 말 것이다.
정기현 민음사 편집자
이런 대화 가운데 놓인 평면도는 더 이상 납작하지 않다. 나의 머릿속에서도 너의 머릿속에서도 우리는 평면도 위에 벽을 세우고 침대를 놓았다 빼 보고 책꽂이를 이쪽 벽에 붙였다 저쪽 벽에 붙였다 한다. 평면도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상상의 장치다. 누구나 평면도를 입체로 만들고 그 안에 많은 것들을 채워 넣을 수 있다. 단지 그것을 내려다보는 행위만으로도.
<이상한 집>의 저자 우케쓰는 일본의 호러·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그는 공포소설 <이상한 집>의 바탕이 되었던 영상이 1000만뷰를 돌파하는 등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일본의 부동산 미스터리 등의 제목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다. 소설로 만들어진 <이상한 집>은 3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이상한 집>은 제목 그대로 이상한 집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을 펼치자마자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이것은 어느 집의 평면도다."
다음 장을 넘기면 한 주택의 1층과 2층의 평면도가 수록돼 있다. 이런 안내의 말과 함께.
“당신은 이 집의 이상한 점을 알겠는가. 아마 얼핏 봐서는 아주 흔한 가정집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주의 깊게 구석구석 살펴보면, 집 안 여기저기에서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지리라.”
화자는 독자들에게 1층과 2층의 평면도를 가만히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위화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것이라고. 2층의 아이 방은 지나치게 고립돼 있고 1층의 욕실 오른편에는 왜 있는지 모를 폐쇄된 공간이 존재한다. 화자의 제안대로 두 장의 평면도를 겹쳐 보니 마침내 평범한 가정집이라기엔 이상한 구석들이 고개를 내민다. 우리는 화자가 평면도를 두고 벽을 세우고 숨겨진 통로를 만들고 그것을 또다시 무너트리는 기이한 추론들을 따라가며 함께 그 안으로 진입한다.
진실은 결코 한 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쪽에서 한 발짝 더 내디디면 겨우 한 조각을 더 내어 주는 식으로 진상은 서서히 밝혀진다. 그 과정의 긴박함은 누구에게나 단순히 소설을 읽어 내는 행위 이상으로 생생할 텐데, 그것은 이 공포 소설가가 평면도를 소설로의 입장문이자 내내 전개를 도와줄 장치로 선택한 덕분일 테다. 공포 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법서 <불쾌한 구멍>(시공사, 2023)의 커버에 왜인지 소름이 돋는 구멍이 뽕뽕 뚫려 있는 것이나, 본문 페이지 오른쪽 하단에 서서히 바람이 빠져 가는 인간 얼굴 풍선의 플립 북 이미지를 수록해 둔 것처럼, ‘보통의 책’과는 조금 달라 보일 수 있는 요소를 섞거나 첨가한 책이 그 의도가 적중하였을 때 독자는 내용이 주는 즐거움 이상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내용과 형식, 형태가 한곳을 향해 함께 달려가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의 쾌감. 만드는 사람 역시 그랬을 것만 같은 즐거움의 전이. (<불쾌한 구멍>의 경우 작가에 대한 이해와 이미지가 주는 소름 끼침이 독자를 번갈아 자극한다.)
나는 우케쓰의 책에서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평면도라는 장치가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든든한 조력자처럼 있어 주어 좋았다. 이사 갈 집의 평면도를 바라보며 아직 눈앞에 없는 집을 그려 보던 익숙한 연상법을 나는 <이상한 집>에도 어렵지 않게 적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연상법은 내게 그랬듯,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쉬운 진입로가 되어 줄 것이다.
어느새 평면도가 아닌 입체 디오라마가 된 집 안, 한밤에 수상한 인물이 고요히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손에 무기처럼 보이는 기다란 물건을 쥐고 감춰진 문 안으로 들어가는 그…….
이쯤 되니 바라는 것은 하나. 이사 갈 집의 평면도에서 기묘한 공간을 발견하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럼 그로부터 끝없는 의심과 끔찍한 상상이 피어날 테고, 이사를 기다리는 마음이 하루아침에 영 달라지고 말 것이다.
정기현 민음사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