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분식집'과 사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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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 사범의 경우 (검찰의) 공소장을 베낀 판결문이 흔했다. 재일동포 유학생 사건에 희한한 혐의가 끼여 있었다. 정부의 혼ㆍ분식 장려로 1970년대 중반 대학가 부근에 분식집이 늘어났는데 이 유학생이 여름방학 때 일본에 가서 친구들에게 한국의 분식집 이야기를 한 대목이 죄가 된다고 공소사실에 올랐다. 대한민국의 식량사정에 관한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 것이다. 판사실로 가 분식집 이야기를 했다고 간첩으로 유죄가 된다면 국가의 수치이니 그 대목을 판결문에서 빼달라고 했다. 판사도 공감을 표시하는 것 같았으나 막상 판결문을 보니 '분식집 이야기=국가기밀누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한승헌 위원장이 지난해 발간한 '산민객담-한승헌 변호사의 유머산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난 15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한 위원장은 사법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언론재단이 주최한 '사법개혁 방향과 과제'라는 포럼에서다.
사법개혁안을 설명하고 언론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다.
한 위원장은 모두(冒頭) 발언에서 "개혁의 주체와 대상이 될 때 서로 입장이 다르다"며 검찰과 사법부의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내비쳤다.
그는 "개혁은 어렵다. 쉬운 일이라면 개혁이란 명칭을 붙였을까"라며 험로(險路)를 뚫고 나가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법개혁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부터 시작돼 지금에 이르기까지 구호만 거창했을 뿐 흐지부지 끝났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연 3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린 것이 10년에 걸친 작품이라면 작품이다.
지지부진하던 사법개혁은 노무현 정부 들어 속도가 붙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03년 8월 대법원장과 사법개혁 공동 추진에 합의했다.
2005년 1월 대통령령에 의거,정식 출범한 사개추위는 8개월간의 준비끝에 사법개혁안을 최근 내놓았다.
여기에는 1945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0년간 지탱돼 온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용이 망라돼 있다.
사법시험 제도가 없어지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된다.
또 석방심사제도가 통합되고 돈 없는 사람도 보증금 없이 구속단계에서 석방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검찰 조서를 증거로 인정하는 것을 엄격히 적용하고 국민이 재판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대부분 검찰과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민의 편의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니 검찰과 사법부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이들 양 기관도 나름대로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수사권조정 배심제 양형기준 마련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기관이기주의로 일관하고 있을 뿐 개혁의 진정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재야법조계의 시각이다.
이들이 외치는 개혁은 시늉에 불과할 뿐 '밥그릇 지키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산민객담'을 읽어보면 사개추위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사법개혁안이 책 곳곳에 녹아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포럼이 끝난 뒤 참석자들에게 '산민객담'을 한 권씩 나눠준 한 위원장의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김문권 사회부 차장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