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은 26일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을 벗어던지고 조직과 제도개혁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는 것만이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신임 대법원장의 이 같은 입장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범사회적으로 과거사 진상규명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중인 상황에서 법원도 조직 및 제도 개혁과 함께 과거사 반성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식민지 시대, 전쟁과 분단의 아픔 속에서 사법작용은 기능을 다하지 못한 시절도 있다.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법부는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저를 포함한 사법부 구성원 모두는 국민께 끼쳐드린 심려와 상처에 대해 가슴깊이 반성하면서 엄숙한 마음으로 사법부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자 한다. 국민과 사법부 사이에 벌어져 있는 틈을 메우고 진정 국민을 섬기는 법원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사법부가 행한 법의 선언에 오류가 없었는지, 외부 영향으로 정의가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며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깨끗이 청산하고 국민 곁에서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묵은 제도와 낡은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국민 입장에서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조직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사법개혁과 사법제도 선진화 작업에도 한 치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며 과감한 제도개혁에 나설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런 노력만이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무엇보다 지난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용기와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 새로운 길을 여는 지혜의 결집이 요구된다"며 어떤 형태로든 과거사 문제를 짚고 넘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도 새롭게 태어나는 법원을 믿어주시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법원에 대한 국민의 성원을 당부했다. 그는 또 법원, 검찰, 변호사 등 법조계에도 "법조는 법의 의한 지배를 실현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라는 소중한 책무를 부여받았다. 오로지 국민만을 바라보고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소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법관과 일반직 간부들이 종전과 달리 법복을 벗고 행사장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으며 시민 배심원단, 학생, 장애우 수용시설 봉사자 등 시민 100여명도 처음으로 특별초청됐다. 한편 이 대법원장은 올 10∼11월 퇴임하는 4명의 대법관 후임자에 대한 제청을 조만간 할 예정이어서 신임 대법원장이 기존 기수와 서열 중심의 인사방식에서 벗어나 어떤 선택을 내릴지 첫 시험대로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 법조일원화,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등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도출됐거나 진행중인 제도개혁 작업 등 사법부의 최고 수장으로서 법원의 각종 현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일지도 주목 대상이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