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출신 기술인력의 질적 수준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공업고교를 포함해 매년 줄잡아 30만명 이상의 이공계 출신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산업계에서는 "현장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인력이 없다"며 아우성을 쳐댄다. 학교 측도 "기술혁신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데 어떻게 교육 현장에서 이를 감당해 낼 수 있느냐"며 볼멘소리를 내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이공계 인력은 양산되는데도 정작 쓸만한 사람은 찾기 힘든 '풍요속의 빈곤'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공계 교육기관의 신·증설에다 우수 인력의 이공계 기피현상까지 겹친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공계 교육시스템의 기능 부전도 기술인력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공계 인력을 기술의 정도에 따라 워크(Worker),테크니션(Technician), 테크놀로지스트(Technologist),엔지니어(Engineer)로 구분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워크는 단순 기능인,테크니션은 고졸 수준의 기술인,테크놀로지스트는 전문대 수준의 숙련기술인,엔지니어는 대학 수준의 공학인을 각각 일컫는다. 이 분류는 이공계 학제 구분의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기술인력 양성·지원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는데도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문제는 근래 들어 이같은 기본 틀이 흔들리면서 이공계 교육시스템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고의 경우 동일계 등을 통해 사실상 대학 진학을 위한 예비 과정처럼 돼 버린지 이미 오래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실업계 고교 출신의 62.3%가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 공업전문대의 경우 천안공업대학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미 지난 80년대에 산업대학으로 개편됐으며,그나마 천안공업대학도 내년에는 공주대학과 통합하게 돼 있다. 더욱이 서울산업대와 한경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국립 산업대학들도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연구중심 국립대학과 통합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산업현장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테크놀로지스트의 양성 기능을 사립 전문대학이 떠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하고 만 것이다. 이처럼 이공계 교육시스템이 표류하면서 기술 인력들은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직무능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 직업인으로서의 기초적 능력조차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공계 인력의 재교육을 위한 산업체의 투자비가 연간 2조8천억원에 이른다는 전경련의 실태조사 결과가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공계 교육시스템을 본래의 목적과 취지대로 되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은 엔지니어를,전문대·산업대·산업기술대는 테크놀로지스트를,공고는 테크니션을 양성한다는 기본 중의 기본부터 철저히 지켜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