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와 안전을 다루는 유엔(United Nations)이 과연 제 구실을 하고 있는가. 해마다 유엔 총회가 열리는 이때쯤이면 제기되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유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이념블록이 형성되면서 강대국들에 휘둘렸고,지금에 와서는 빈곤이나 마약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분쟁 등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대립이 지속되면서 유엔의 위상이 더욱 실추되고 있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그러잖아도 탐탁하지 않게 여겨 분담금을 체납해 왔던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면서부터 결정적으로 유엔에 등을 돌렸다. 유엔이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고 이라크 총선을 감시할 직원의 파견을 거부한 탓이다. '유엔 무용론'이 확산된 것은 이 같은 일련의 사정과 무관치 않다. 이제 유엔 개혁은 국제사회의 당면과제로 등장했다. '급진적인 개혁만이 유엔의 살길'이라는 데에 이의를 다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개혁의 핵심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개편으로 모아진다. 특히 일본의 안보리 진출은 우리의 이해와도 맞물려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때마침 올해는 유엔창립 60주년이 되는 해여서,노무현 대통령을 비롯 170여개국의 국가원수와 정부수반들이 지난주 유엔에 모여 '빈곤문제와 유엔개혁'을 주제로 3일간의 정상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빈국지원과 핵문제,분쟁개입,유엔기구개편 등에서 선진국과 개도국간에 적지 않은 이견을 보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등장한 유엔이 과거 60년보다 앞으로 60년이 더 어려울 것으로 점치는 사람들이 많다. 갈수록 '힘의 질서'가 국제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유엔'이란 이름은,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국가 간의 협력을 증진시키자는 의미에서 지었다고 하는데 그 진정한 뜻을 실현시키는 것은 순전히 강대국들의 몫인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