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도 실험에 미쳐 임종을 못 했습니다.


불효자식이죠."


세계 최초로 '모트 절연체-금속 전이현상'을 규명해 '스타'가 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김현탁 박사(47).일요일에도 대덕연구단지 내 연구실에 나온 김 박사는 지갑에서 어머니 사진을 꺼내 보여 주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께서 행상을 해 자식들을 가르쳤다"며 "고비 때는 어머니 사진을 보며 힘을 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 절연체(부도체)도 특정 전압을 가하면 도체가 된다'는 이른바 '모트 가설'을 입증해 반도체 소자 이후의 신소자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3월25일은 제2의 생일


김 박사는 2003년 3월25일을 잊지 못한다.


그 날은 그가 미친 듯이 웃은 날이다.


모트 전이현상이 이론과 실험을 통해 완벽하게 입증된 날이다.


"떡을 사왔습니다.


팀원들과 떡잔치를 벌였습니다.


이젠 논문으로 발표할 수 있게 됐다고 다들 난리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논문을 우리 팀이 낸다고 하니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김 박사는 잔치가 끝난 뒤에도 연구실에서 혼자서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가 연구한 모트 전이현상은 일반인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194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모트가 제시한 가설로 절연체가 도체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돌멩이가 금이 되는 연금술과 비슷한 이론으로 56년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이 이론을 실험을 통해 완벽하게 입증하게 되면 반도체 소자 이후의 나노급이나 테라급 소자 시대를 여는 이론적 실험적 토대를 마련하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김 박사는 "반도체 소자는 나노나 테라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며 "나노,테라급 소자가 되려면 소자 크기가 더 작아져야 하는데 반도체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소자는 나노급으로 작아지면 전류를 흐르게 하지 못해 소자로서의 기능을 잃지만 모트 전이현상을 이용한 소자는 작아져도 전류가 잘 흐르기 때문에 신소자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얘기다.


언론은 신소자 시대가 열리면 모트 절연체는 20년간 100조원 규모의 시장을 창출하는 원천기술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영감이 뒤통수를 치다


김 박사가 모트 전이현상에 미치기 시작한 것은 13년 전인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쓰쿠바대학 박사과정 때 전이현상에 매료되기 시작했고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동료들과 토론을 하다가 '심플한 아이디어'가 불쑥 떠올라 빠져들게 됐다는 것.


김 박사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무 흥분해 심장이 벌떡일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곧장 일본인 지도교수에게 달려가 열변을 토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그러나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ETRI 테라소자팀에 합류한 후인 2001년 봄에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


집에서 연구실까지 걸어가면서 모트 절연체에 관해 골똘히 생각했는데 전자의 움직임을 분수로 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김 박사는 이때부터 번개처럼 스쳐간 아이디어을 붙들고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현대 물리학계가 56년 동안 풀지 못했던 '신비'를 밝혀내게 됐다.


◆장비를 수없이 불태우다


실험 과정에서는 장비를 수없이 불태웠다.


센 전압을 가하면 실험물질과 소자 등을 포함한 장비가 녹아내려 수리와 실험을 반복했다.


모트 전이현상을 완벽하게 입증하려면 실험물질이 상전이(물이 수증기가 되는 등의 변이)되지 않아야 한다.


56년간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실패한 것도 실험대상 물질이 녹아내리거나 변이됐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상전이를 막는 관건은 일정한 전압을 어떻게 가하느냐에 달렸다"면서 "세계 어떤 학자도 모르는 이 방법을 우리가 비밀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인터넷에 논문을 올린 지 7개월 뒤에 스웨덴에서 비슷한 내용의 논문이 발표됐다.


이들이 우리의 논문대로 실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결과를 얻은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100조원 규모의 신소자 시장 창출


김 박사는 "반도체 소자 이후의 신소자 시대를 여는 데 기여하겠다"고 함축적으로 말했다.


구체적인 시장창출 효과에 대해 언론에서는 관심이 많지만 수치는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닫았다.


다만 차세대 메모리,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며 반도체 소자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열감지 소자나 과전류방지 소자 등으로 쓰이면 형광등이 타거나 수명이 짧아지는 단점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노벨물리학상 후보가 나왔다"는 외국의 평가에 대해 "부담스럽다"며 겸손해했다.


그는 끝으로 "10여년간 가정적이지 못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



< 김현탁 박사 약력 >


△1958년 강원도 도계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남

△9세 때 부친 고혈압으로 별세,어머니가 행상으로 자식 키움

△포항 동지상고

△1982년 부산대 물리학과 졸업

△1984년 서울대 자연대학원 물리학과 석사학위(고체물리 이론)

△1984~1985년: 한국타이어 기술연구소 연구원

△1986~1992년:시스템베이스 개발부장

△34세에 일본에 건너가 1995년 쓰쿠바(筑波)대에서 박사학위(고체물리실험)

△1995~1998년: 일본 쓰쿠바대 조교

△1998년~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반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테라전자 소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