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투기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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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31일 부동산투기억제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이틀 뒤인 9월2일자 신문에 “이제 부동산 투기는 끝났습니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실은 것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자신만만해하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 근거는 “다주택보유자, 투기자에 대한 세금강화로 투기를 근절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주택 이상을 보유할 경우 고율의 종합부동산세를 매기고, 팔 때에는 고율의 양도세를 중과하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이익이 크게 떨어져 투기행위 자체가 근절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번 부동산 투기억제 조치는 투기꾼들에 의해 주도되는 주택 가수요를 차단하고 양질의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합니다.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고,서민들에게 주택마련자금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금융제도를 개선키로 한 것도 매우 긍정적인 조치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만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제도가 바뀌는 것은 투기의 조건만 바꿀 뿐 투기심리를 근본적으로 뿌리뽑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투기억제 종합대책이 발표된 직후 신도시로 건설될 것이라고 보도된 송파구에 투기꾼들이 몰려든 것만 봐도 정부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보유세율을 높이면 집부자들의 세부담이 늘어 투기 주택수요가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부터 시작해봅시다. 과연 그럴까요. 정부가 자주 예로 들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봅시다. 최근 미국에서 귀국한 친구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1억4천만원에 집을 샀더니 보유세가 4백만원이나 나왔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미국의 보유세율은 한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미국 주택보유 평균 실효세율이 1%라고 하니 한국의 0.15%보다 무려 7배 가까이 높지요. 이같은 미국의 사례를 예로 들며 정부는 2009년까지는 한국의 주택보유 평균 실효세율을 1%로 높인다고 합니다.
보유세율이 높은 미국에서 투기가 없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의 투기바람은 한국 못지않게 거셌고, 부동산값 상승률도 높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보유세율의 높고 낮음이 투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보유세가 거의 부과되지 않았던 과거에도 한국의 지방도시나 농촌의 집값은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진 곳도 많았습니다. 보유세율이 낮다고 해서 투기가 일어나고, 보유세율이 높다고 해서 투기가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은 허구입니다.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는 것은 보유세율의 높낮이가 아니라, 주택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할 것인지 아닌지, 그러니까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매매차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 투기가 생깁니다.
보유세율을 높이면 집을 두채 이상 갖고있는 사람들의 세부담만 높아진다는 주장도 그럴듯해 보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집을 빌린 사람들이 세금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보유세율이 높은 미국에서는 예컨대 ‘전세’라는 개념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든 임대주택이 월세이지요. 웬만한 도시의 월세는 한달에 2백만원(2천달러 정도)이 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세가 대부분의 임대주택 형태입니다. 왜 그럴까요.
명확한 근거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그것은 보유세와 같은 세금부담 체계가 달랐던 것도 한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예컨대 한국에서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나머지 필요한 돈은 집을 전세로 내줌으로써 무이자로 조달해왔기 때문에 ‘전세’가 일반적인 임대 형태가 됐을 것입니다. 투기꾼들에게는 보유세 부담이 거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월세를 굳이 받을 이유가 없었겠지요. 은행대출금과 전세금을 합치면 돈이 없어도 주택을 몇채라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월세’보다 오히려 ‘전세’가 투기꾼들에게는 더 유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집을 두채 이상 보유하는 것이 재산세 및 종합부동산세 증가 등으로 부담이 된다면 집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전세금에만 의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앞으로는 2주택을 보유할 경우 주택 한채에 대해서는 은행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되므로 2주택 이상 보유자들이 굳이 집을 전세로 내놓을 이유도 줄어들겠지요. 따라서 2주택 이상 보유자들은 전세 주택을 월세로 전환을 시도하거나 최소한 보유세에 상응하는 만큼의 돈을 월세로 받는 일부전세+일부월세 형태로 바꾸려고 할 것입니다.
이 경우 1억-2억원 정도의 돈을 무이자로 맡기는 것(전세)만으로 살 집을 빌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기적으로 돈을 월세로 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주택 보유세 체계의 변화가 주택 임대형태에 상당한 변화를 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보유세 과세 강화는 단기적으로 다주택 보유자들의 세부담을 늘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세가 거의 대부분이었던 한국의 주택임대 형태를 바꿔놓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이번 대책이 무주택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게 아니냐고 염려하는 근거이기도 하지요.
주택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주택사용권만 인정하면 투기는 영원히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의 경우 99년 사용권만 인정해주고 있는데도 상하이 지역은 주택투기의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주택과 관련된 권리가 소유권이든 사용권이든, 아니면 임대권이든 관계없이 그것이 수요초과로 인해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투기꾼은 언제라도 몰려들 것입니다.
양도세율을 높이는 것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양도세율이 높아진 만큼 세후 매매차익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율의 양도세율도 투기를 근본적으로 차단하지는 못합니다. 주택 투기의 세후 수익률이 다른 상품에 투기했을 때보다 더 높다면 주택 투기는 언제든지 재연될 것입니다.
투기는 본질적으로 ‘향후 수익증가율이 시장평균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투기의 토양이지요. 그 이기심은 결코 제도나 세금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투기심리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고 인정한 뒤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투기를 진정으로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택 매입으로는 시장평균의 수익률(통상적으로 이자율로 보면 되겠지요)이상 이익을 남기지 못한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원하는 양질의 주택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질의 주택공급을 지속적으로 확대(불량 노후주택을 쾌적한 집으로 바꾸는 것도 물론 포합됩니다)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세금중과를 통한 투기 가수요 억제정책’과 함께 ‘신도시 건설 등을 통한 공급확대’정책을 함께 내놓은 것은 매우 바람직한 정책결정입니다.
“신도시가 건설될 송파구는 서울 강남권인데, 투기바람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맞는 지적입니다. 단기적으로 투기광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고, 이 경우 강남권 집값을 다시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큽니다.
이같은 부작용 때문이라면 송파구에 건설될 아파트들을 모두 품질이 우수한 영구임대주택으로 건설하는 쪽으로 바꾸면 됩니다. 입지 좋은 지역에 품질이 좋은 임대주택을 지으면 중산서민층이 거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예전과 같은 투기바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부수적으로는 정부가 2주택이상 보유를 억제함으로써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대주택 부족 현상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되겠지요. 판교 아파트분양이 집값 불안의 근원이라면 판교에서도 영구임대주택으로 바꿔서 공급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양이든 임대이든 관계없이 양질의 주택공급을 계속 확대해야 하고, 그것만이 무주택자의 주거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길만이 중장기적으로 집값을 안정시켜 투기의 토양을 최소화하고 국민 전체의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유재산이 인정되고 경제가 발전하는 한 주택 투기는 결코 끝나지 않겠지만, 투기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최소화하고 예상수익률을 시장평균 수준으로 낮춰가겠다는 것은 정부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입니다.
현승윤 경제교육연구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