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중인 기업의 주가를 띄우려고 장내 매각을 금지해 둔 주식을 싸게 사들인 뒤 장내 매각으로 이익을 챙겨도 처벌할 법규가 없는 점을 악용, 돈을 받고 불법 주식매매를 알선한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26일 금융기관에 청탁해 장내 매각이 금지된 하이닉스의 출자전환 주식을 저가에 낙찰받게 해 준다며 13억여원을 받은 혐의(특경가법상 알선수재)로 J투자회사 대표 이모(32)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7월 입찰방식으로 매각예정인 하이닉스 출자전환 주식 각 200만주와 100만주를 입찰대행하는 투자증권회사에 청탁해 낙찰받게 해 주겠다며 박모, 황모씨로부터 합계 13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이씨를 도와 출자전환 주식 매수를 알선해준 대가로 이씨로부터 각 5천만~1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H보험사 펀드매니저 안모(31)씨 등 3명을 각각 구속 또는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은행자금 140억원을 박씨에게 주식매입 대금으로 제공한 대가로 13억7천만원을 받은 혐의(특경가법상 수재 등)로 P상호저축은행 대표 하모(52)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검찰은 하씨에 대해 재차 영장을 청구했으나 하씨가 해외로 도주함에 따라 하씨를 기소중지하고 지명수배했다. ◆`장내매각 금지' 처벌방법 없는 점 이용해 `돈파티' = 검찰은 지난해 7월 장내매각이 금지된 하이닉스의 출자전환주식이 장내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내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장내 매각이 금지된 주식을 채권은행으로부터 헐값에 사들여 장내 매각함으로써 거액의 불법수익을 올리기 위해 금융권에 거액의 로비자금이 뿌려진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결과 이씨(구속)는 H투자증권이 하이닉스 출자전환 주식의 입찰대행사로 선정되자 H투자증권 관계자들과 친한 안씨와 공모해 매수희망자를 찾으면 H투자증권에 로비해 주식을 낙찰받게 해주고 그 대가로 웃돈을 받아 챙기기로 했다. 이씨는 매수희망자인 박씨와 황씨에게 "하이닉스 주식은 시중에서 1만2천원대에 거래되는데 출자전환 주식은 6천원대에 살 수 있다. 입찰대행사인 H투자증권 담당자에게 부탁해 하이닉스 주식을 낙찰받게 해 줄 테니 대금의 10%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를 통해 하이닉스 출자전환 주식을 매수한 두사람 중 박씨는 주식을 즉시 장내에서 되팔아 약 4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나 채권금융기관협의회 결의사항에 위반해 장내매각이 금지된 주식을 장내에서 팔더라도 처벌할 법규정이 없는 반면 기대되는 이익은 막대하다는 점이 금융알선 비리를 키우는 온상이 됐다고 말했다. 주식 유통물량을 줄여 구조조정중인 기업의 주가를 띄울 목적으로 출자전환 주식의 장내매각을 금지하지만, 장내매각을 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장내매각금지 주식을 싸게 산 뒤 장내에서 제값에 팔아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불법 장내매각을 한 박씨와 황씨는 처벌할 법조문이 없는 관계로 이 사건과 관련해 사법처리를 면했다. 또 출자전환 주식의 입찰과정이 제대로 공개ㆍ관리되지 않아 브로커들이 농간을 부릴 여지를 만들어 줬다는 점도 결정적인 문제였다. 채권금융기관협의회는 지난해 12월 하이닉스 출자전환 주식 전량에 대한 보호예수(최대주주나 기관투자자들이 일정기간 보유주식을 팔지 못하게 하는 것)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출자전환 주식의 장내유입을 방지했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됐다. 검찰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채권금융기관이 부실징후기업의 출자전환 주식을 매각할 때는 공개ㆍ경쟁입찰에 의하도록 하는 등 절차를 정비해 부정의 소지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주변 조폭 실체 확인 = 장내매각금지 주식을 팔아 40억원을 벌어들인 박씨는 편법으로 한몫 챙기고도 법망을 피한 반면 난데없이 폭력배에게 시달려야 했다. 불법 주식거래를 통해 박씨가 큰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여의도 증권가에 퍼지자 지난해 11월 김모(48.구속)씨 등 폭력배 6명이 박씨에게 달려들어 현금, 승용차 등 총 6억6천만원 상당을 갈취해갔다고 검찰은 밝혔다. 증권가 주변에 기생하던 폭력배들은 박씨가 기소중지자 신분이어서 신고할 수 없다는 약점을 잡고 박씨를 두 차례 납치해 폭행하며 금품을 뜯어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김씨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야간공동 공갈, 감금)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또 다른 김모(51)씨를 불구속기소하는 등 폭력배 6명을 사법처리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