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대표적 강성노조 국가였던 독일의 노사관계가 확 달라지고 있다. 독일 노사는 추가 임금 인상 없이 근로시간을 연장하고 비정규직을 적극 활용하는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사관계가 '대립에서 상생(相生)'으로 바뀌지 않으면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결과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19일)는 스페셜리포트를 통해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격이었던 독일 경제가 노동부문 개혁을 통해 한층 달라진 모습으로 견실한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립에서 상생(相生)으로 지난해 말부터 독일에서는 '임금 상승 없는 근로시간 연장'이라는 새로운 노사 대타협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협력적 노사관계를 만들어가지 못하면 아예 일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진 결과다. 지난해 5월 유럽연합(EU)이 확대된 이후 일자리가 신규 가입국인 체코 헝가리 등 임금이 싼 동유럽으로 속속 넘어가면서 독일의 근로자들은 '사용자의 협력적 파트너'로 역할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11월 폭스바겐 노사는 2011년까지 노조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28개월간 임금을 동결하고 신규고용에 대해 임금을 감축키로 합의했다. 지난 4월엔 지멘스의 휴대전화 사업장 노사가 근무시간을 현행 주당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연장하기로 합의했으며,최근엔 보슈 자동차 부품공장 노조가 1시간 연장근무와 급여 동결을 받아들였다. 노사가 상생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독일의 노동비용은 급감하는 추세다. 유럽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05년 현재 독일의 단위 노동비용(똑같은 상품 1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동비용. 1999년 100기준)은 88을 기록,스페인(109) 이탈리아(108) 등 다른 서유럽 국가들보다 하락 속도가 가파랐다. 정부의 사회보장 혜택 축소로 실업수당이 급감하면서 장기 실업자들 사이에서는 시간당 1유로만 받고 근무하는 '1유로 직장'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년간 독일에서는 약 20만개의 '미니 일자리(mini-jobs)'가 생겼다. 특히 독일 내 자영업자는 4년 전 400만명에서 현재 440만명으로 늘어나 노동 시장이 한층 유연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실업률은 최근 4개월째 하락했다. ◆외국 투자자들도 신뢰감 표시 외국인 투자자들도 전례없이 독일 기업 주식을 집중 매입,노동시장이 유연해진 독일 경제에 강한 신뢰감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지난 5∼6월에만 710억유로(약 88조7500억원)의 주식을 사들였다. 독일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30대 대기업 중 외국인 지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도 8개사에 달한다. 경영컨설팅 업체인 언스트&영은 "외국인들은 오는 9월18일 독일 총선이 끝나면 새 내각이 더욱 강력한 경제 개혁을 실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함으로써 독일 기업들은 더욱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호영·유영석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