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연일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동 두바이산 원유의 가격은 8월 중순 현재 57달러 선에 이른다. 1998년 배럴당 10달러 선이었던 것이 7년여 만에 5배 이상으로 오른 셈이다. 고(高) 유가는 산유국들에는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안겨 준다. 이는 곧 원유 수입국들이 그만큼의 경상수지 적자를 입게 됨을 뜻한다. 중동 산유국들의 경상수지 흑자는 올해 약 1807억달러,내년엔 1826억달러에 달해 2003년의 517억달러,2004년의 928억달러와 비교해 볼 때 대략 2~3배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그런데 비(非) 산유국들이 유가 상승으로 인해 늘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오일 달러'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오일 달러는 순환하면서 세계 경제에 다각도로 영향을 미친다. 유가 상승에 따른 석유 수출국들의 경상수지 흑자는 단기적으로 달러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제 원유시장에서 원유 거래는 대부분 달러화로 결제된다. 이에 따라 유가 상승은 전 세계적으로 원유 수입대금으로 이용되는 달러화의 수요를 증가시킨다. 고(高) 유가로 인한 달러화 수요 증가분은 2000~2004년까지의 평균 유가인 26.6달러(두바이유)와 현재 유가의 차이를 고려하면 하루 평균 19억5000만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 국제 외환시장에 내놓는 하루 평균 달러화 공급액 17억~18억달러를 웃도는 규모다. 원유 수입국들이 미국이 쏟아내는 것보다 많은 달러화를 사들이려고 한다면 달러화의 가격은 오르거나 하락폭이 적어지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오일 달러는 무역과 투자 등을 통해 다른 나라들로 흘러 들어간다. 오일 달러 가운데 일부는 산유국 내에서 이뤄지는 공공건설 사업의 재원으로 쓰인다. 이 돈은 최종적으로는 건설 사업을 따내는 외국 업체들에 돌아간다. 오일 달러의 상당 부분은 유럽에서 생산된 고급 자동차나 한국 기업이 만든 에어컨 등을 사는 데 사용된다. 이들 수출국은 제조상품 수출을 통해 석유 수입 대가로 산유국에 건네준 달러화의 일부를 도로 찾아오는 셈이다. 오일 달러의 일부는 미국 채권시장이나 동아시아 주식시장으로 흘러들기도 한다. 중동 국가들이 원유수출 대금으로 미국의 장기 국채를 많이 사들이는 경우 미국의 장기 금리가 낮게 유지돼 미국 경기를 진작시킬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정책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시장에서 장기 금리가 인상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부동산 거품을 더욱 크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오일 달러의 혜택을 많이 입는 국가에 속한다. 유가 변동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에 대한 한국의 수출 간 상관계수는 0.84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유럽연합(EU)은 0.7로 한국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유가 상승에 따른 혜택을 입는다. 반면 미국의 경우 -0.21로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에 대한 수출이 늘어나지 않고 있다. 이들 국가가 미국에서 공산품보다 농산품 등의 수입에 치중해 유가 상승에 따른 추가적인 수입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그 원인으로 작용한다. 중동 건설 수주는 한국이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는 한 가지 유력한 통로다. 유가가 급등세를 유지함에 따라 올해와 내년 사이 중동 국가들의 건설 프로젝트 발주액은 2002~2003년의 4배에 이르는 3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중동 건설 수주액 또한 지난 7월 말 현재 48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연말까지 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970~80년대 '중동 건설 붐'에는 못 미치지만 1986년 이후 작년까지의 연평균 건설 수주액 22억달러에 비해서는 3~4배에 이르는 규모다. 이같이 유가 상승은 세계 경제 전반에 걸쳐 다양한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한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일 달러의 다양한 효과도 따져봐야 한다. 이를테면 이론적으로는 유가 상승이 반드시 한국의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라는 법은 없다. 유가 상승에 따라 원유 수입대금으로 달러화를 많이 지출하면 경상수지는 악화된다. 하지만 오일 달러가 달러화를 강세로 돌려놓는다면 수출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미국 제품보다 높아지기 때문에 수출이 늘 수 있다. 더욱이 오일 달러가 누적돼 중동 건설시장이 열기를 띨 경우 한국 건설업체들의 중동시장 진출이 활발해져 국제 수지를 개선시킬 수도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부정적 요인이 긍정적인 요인보다 커 유가 상승은 국제수지 악화로 이어졌다. 고유가와 같은 복병을 맞이하게 될 때는 다양한 경로를 통한 파급 효과를 면밀히 추적해 만반의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서원 정책분석그룹 책임연구원 swlee@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