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전쟁'으로 흥행의 마술사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새 영화 촬영에 들어갔다.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의 '검은 구월단'이 이스라엘 대표선수단을 집단 살해한 테러사건을 소재로 한 이 정치 스릴러는 아직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내년 아카데미상의 유력한 수상작으로 점쳐지고 있는 화제작. 수상을 노려 개봉날짜가 오는 12월23일로 일찌감치 잡혀있다. 이 영화의 미국내 배급을 맡고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해외배급은 드림웍스)는 5일(현지시간) 스필버그가 '우주전쟁' 개봉일인 지난달 29일 말타에서 촬영에 돌입했으며, '트로이'에서 헥토르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에릭 바나가 테러리스트들을 추적하는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요원으로 주연한다고 발표했다. 이밖에 제프리 러시, 다니엘 크레이그, 매튜 카소비츠 등이 출연진에 포함됐다. 이번 뮌헨영화는 뉴욕타임스지가 "스필버그 최대의 도박"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소재 및 주제를 잘못 다루거나 혹은 관객들에 의해 잘못 받아들여질 경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필버그 자신도 이같은 현실을 잘 알고 있어 1년 전부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전 중동지역 외교관 데니스 로스 등 정치인들의 자문과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유태인 파워맨인 스필버그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제작과 쇼아재단 설립 등을 통해 유태인학살 및 생존자들의 증언 보존에 힘써왔지만 현재의 중동지역 문제에 대해서는 조용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스필버그의 새 영화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영화가 바탕을 두고 있는 조지 요나스의 1984년도 회고록 '복수'에 있다. 요나스가 출판 당시엔 모사드 암살팀의 멤버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그 진위여부가 문제됐었기 때문이다. 스필버그의 영화는 이스라엘 선수들이 학살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전체적인 초점은 이스라엘의 반격에 맞추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 후 이스라엘은 모사드 요원들을 파견, 올림픽 학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암살하도록 지시했고, 이같은 목표암살 전략은 지금까지도 도덕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스필버그가 이번 영화로 미국 및 이스라엘의 유태인들 사이에서 쌓아온 자신의 절대적인 위상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스필버그는 뉴욕타임스와 이스라엘신문 마리브, 아랍 TV방송국 알 아라비야에 동시에 성명을 발표, "검은 구월단에 의한 공격과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은 중동의 현대사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면서 "이스라엘의 반응을 복수를 위해 파견된 요원들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일은 지금까지 정치적, 혹은 군사적인 입장에서만 다루어졌던 그 끔직한 일에 인간적인 측면을 보태는 것"이라며 인간적인 접근에 초점을 둘 것임을 강조했다. 9.11 이후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해 한층 민감해져있는 미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뮌헨영화는 테러리스트 공격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라는 큰 주제를 던지는 셈이기도 하다. 스필버그가 어떻게 접근하듯 영화가 뜨거운 정치적 논쟁과 논란을 가져올 것임은 분명해보인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이 남 통신원 enam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