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의 모토가 '아름다운 도전'이거든요. 늘 새로운 모습으로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남고 싶어요."


내년이면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는 소프라노 조수미. 스스로 "참 많은 일을 한 것 같다"고 회고하는 그는 늘 그래왔듯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에겐 단순히 '성악가'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음악적 재능뿐 아니라 이 재능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끼'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여는 귀국공연도 늘 새롭다.


전형적인 성악 콘서트에서 벗어난 크로스오버 무대도 마다하지 않았고, 지난해 4년 만에 내놓은 신보엔 영화음악을 담기도 했다.


지난 여름에는 국내 첫 오페라 '리골레토'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올 가을엔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레퍼토리"라는 바로크 음반 녹음에 도전한다.


앞서 오는 30일에는 지난해 '리골레토'를 공연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세계적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와 마련하는 듀오 무대다.


그는 "드미트리와의 공연은 처음"이라며 "왠지 둘이 성격도 비슷하고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떤 무대가 될지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뉴욕에 머물고 있는 그를 지난 2일 전화로 만났다.


--뉴욕에는 언제 도착하셨나요?


▲어제 왔어요. 9일 열리는 카라무어 페스티벌에서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을 공연하는데 오늘부터 연습에 들어갔거든요.


그동안 수없이 한 작품이지만 이번엔 지휘자가 원래보다 한 음 높여 다시 썼어요.


새 오페라를 하는 거나 다름 없어 연습이 만만치 않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4월부터 쉬지 않고 공연했어요. 뉴욕에 오기 직전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야외광장에서 호세 카레라스와 공연했구요.


그리스 대통령도 참석하셨죠. 그 전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중국 작곡가 기강 첸이 쓴 현대곡을 세계 초연하기도 했습니다.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었는데 리듬, 음정, 박자가 모두 수학적이어서 어려웠지만 자신에게 도전하는 의미에서 좋았습니다.


4월 벨기에 브뤼셀 '마술피리' 공연 땐 벨기에 로열 패밀리가 다 오셨어요.


공연 후에 만났는데 임신 중인 마틸드 공주가 태교를 위해 제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 해 반가웠지요(웃음).


--내년이 벌써 데뷔 20주년이네요.


▲너무 세월이 빨리 가는 것 같아요. 그동안 쓴 일기장을 보니(그는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쓴다고 한다)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여행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고, 세계를 다니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어요.


참 열심히 산 것 같아요.


다만 내 자신을 위해 시간을 갖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아쉬워요.


--20주년을 어떻게 기념하실 건가요?


▲저를 위해서나, 팬들을 위해서나 기억에 남을 만한 연주와 이벤트를 준비 중입니다. 런던, 로마, 빈 등 유럽 5개 도시와 미국, 한국에서 순회공연을 열 계획이에요.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로 피아노와 단 둘이 하는 공연이 될 겁니다.


10년 전 썼던 자서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의 후속편을 내려고 일기장을 정리 중인데 내년에 맞춰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특별히 내년엔 처음으로 한국 성악도들을 위해 마스터클래스를 열어볼까 합니다.


유럽에선 연주자들이 은퇴한 후면 모를까 현역일 땐 마스터클래스를 잘 열지 않아요.


1시간 동안 많은 걸 가르칠 순 없겠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요.


음악적 테크닉보다는 음악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들 말입니다.


오는 9월엔 처음으로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도 맡게 될 것 같아요.


이탈리아 토스카나 부근에서 열리는 콩쿠르인데 한국 학생들이 많이 입상하도록 힘 좀 쓰려구요(웃음).


--요즘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 성악도들의 활약이 대단한데요.


▲콩쿠르 입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걸 발판으로 국제 무대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단계를 못 넘는 게 아쉬워요. 제가 후원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해주고 싶습니다.


--새 음반 얘기도 들리던데요.


▲9월에 녹음에 들어가는데 처음으로 바로크 음악에 도전합니다. 바로크는 제가 제일 두려워하는, 자신 없는 레퍼토리예요.


절제된 스타일의 바로크 음악이 열정적인 제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지난 4월 벨기에에서 르네 야콥스와 공연하면서 그 분께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이젠 알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바흐, 비발디, 헨델 등 대표적 작품들뿐 아니라 그 이전 시대 프랑스, 영국 바로크 작품까지 다뤄볼 생각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역사에 남을 만한 음반을 만들고 싶어요.


--지난해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스스로 '엔터테이너'라 부르셨던데.


▲한국에서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어떤 의미로 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래뿐 아니라 의상, 세팅 등 아티스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는 만능 음악인이라는 뜻이었어요.


늘 새로운 음악으로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것 말입니다.


제 삶의 모토가 '아름다운 도전'이거든요.


실력도 중요하지만 '퍼스날리티'가 있어야 해요.


무대 위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로 관객에게 웃음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걸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전 평범한 성악가가 되기는 싫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바라는 건 한국인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남는 거예요.


20년 동안 무대에 서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는 게, 최선을 다 해왔기 때문이에요.


제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요.


(때론 정통 성악에서 벗어난 '외도'에 대해) 보수적인 분들은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지만 20년 간 정말 자신감을 갖고 했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결과는 어떨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작년 오페라 '리골레토' 공연은 만족스러우셨나요?


▲그 때 너무 아팠어요. 감기는 아니었는데 성대에 이상이 와서…. 원래 잘 아픈 체질이 아닌데 이유를 알 수가 없더라구요.


평소의 40%도 못했어요. 보통 외국 같았으면 공연을 취소했을 거예요.


한국에서 처음 하는 오페라였는데 너무 안타까웠죠. 그래도 레오 누치가 워낙 잘 하셔서 다행이었어요.


오페라라는 게 디바 혼자 반짝거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리골레토'는 좋았습니다.


다음엔 '루치아' '햄릿' 등 타이틀 롤의 면모를 좀 더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국내에서 하고 싶어요.


--인생의 남은 시기, 또 도전할 대상은 무엇인지요.


▲음악을 통한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시간 날 때마다 한국 출신 연주자들을 돕고 싶고, 한국을 알리는 문화대사 역할도 하고 싶어요.


또, 이렇게 말하면 인터뷰성 답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60-70대가 됐을 때 한국인들의 정서를 위한 뭔가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네요.


--오는 30일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와 듀오 무대를 갖게 되는데.


▲그와는 공연이 처음이라 기대가 큽니다. 둘이 공통점이 많아요.


일단 나이도 같고, 열정적이고 화끈한 성격도 비슷할 것 같아요.


드미트리와 함께 공연한다니까 주위의 여자친구들이 굉장히 부러워하더라구요(웃음).


프로그램은 제 경우 비르투오조 적인 아리아들을 많이 선택했어요.


드미트리는 러시아, 베르디의 드라마틱한 레퍼토리를 선보일 것 같구요.


둘이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기대됩니다.


--그럼 여름 휴가는 언제 가시나요?


▲뉴욕 공연 끝나고 한국에 들어가기 전 잠깐 집이 있는 로마로 갈 거예요.


열흘 정도 머물면서 해변에 다녀오려구요.


실컷 재충전하고 한국으로 갈 겁니다(웃음).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