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요즘 중국 국영기업이 석유회사 유노칼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일로 시끌벅적하다. 의회는 물론 백악관까지 나서서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는 중대사안으로 문제삼는 분위기다. 유노칼이 미국 내 9위업체라는 점에서 '오버 액션'이라는 관측도 있지만,미국쪽 시각은 사뭇 진지하다. 최대 경쟁자인 중국과의 에너지 전쟁이 안방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실제 주요 국가들의 에너지자원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할 정도로 치열하다.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더 가져다 쓸 수 있는 조달원을 확보하려는 자리다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세계 2위 석유소비국인 중국이 에너지전쟁에 불을 당기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미국이 독재와 부패를 문제삼아 거리를 둬왔던 일부 국가들을 엄호하는 외교전을 불사하며 틈새를 파고 들고,마오쩌둥-스탈린 시대 이후 40여년간 앙숙 관계였던 러시아와도 손을 잡았다. 중국은 이 과정에서 후진타오 국가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직접 나서는 정상외교로 물꼬를 트고 있다. 이에 더해 자원보유국들도 보호주의로 흐르고 있다. 이런저런 합종연횡을 통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유사한 생산자 카르텔과 지역기구를 잇따라 만드는 추세다. 세계 제5위의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과 쿠바 카스트로 대통령은 지난주 13개국으로 구성된 '카리브 석유동맹'을 출범시켰다. 또 이슬람권은 석유등 세계천연자원의 60%를 차지하는 국제이슬람기구(OIC)를 중심으로 힘을 합치며 세계시장에서 목소리를 높일 태세다. 천연가스 생산국 역시 러시아 주도로 OPEC과 유사한 천연가스수출국기구(ONGEC)를 만들려 하고 있다. 개별국가들의 '문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최근 OPEC 내 2위 생산국인 이란의 새 대통령은 "앞으로 이란기업에 석유개발 우선권을 주겠다"고 언급,세계원유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남미 2위의 천연가스 생산국인 볼리비아에선 지난 6월 천연가스산업 국유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카를로스 메사 대통령이 전격 사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열강들의 에너지 세계전쟁과 생산국들의 자원 보호주의 흐름은 우리처럼 자원이 없는 소비국들로선 나라의 명운이 걸린 국가대사다. 그러나 돌아가는 우리 사정을 보면 한가롭기 그지없다. 당장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지만,지난해 9월 카자흐스탄 방문 때 유전개발 문제를 협의했던 정도를 제외하면 '에너지 외교'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우리처럼 거의 100%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은 풍부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지만,고이즈미 총리가 특별한 현안없이도 수시로 인도 동남아 등을 찾고 있는 것과는 크게 대조된다. 정부 에너지 대책도 수십번은 재탕됐을 승용차 10부제 운행이란 낡은 레퍼토리를 다시 꺼내드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정책 국제공모'라도 해야할 판이다. 머지않아 노 대통령이 동남아시아를 순방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동남아에서나마 정상이 에너지문제에 애쓰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문희수 국제부장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