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 모 사단 최전방 소초(GP:Guard Post)의 `총기난동' 사건과 관련, GP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예비역 장병들은 여러측면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한 김동민(22) 일병은 지난해 12월 입대, 이달 초 일병을 단 `신병'이나 다름없는데도 실탄과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아무런 제약없이 GP 내를 활보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폐쇄적 공간으로 유ㆍ무형의 폭행이 어느 정도 묵인되는 GP의 특수한 분위기에서 병사관리와 경계근무, 탄약과 장비관리 지침 등을 소홀히 해 빚어진 `인위적 참극'이라는 게 GP근무 경험자들의 진단이다. ◆ `천만다행' 적은 사상자수 = 김 일병은 수류탄 1발을 내무반에 던지고 실탄 40여발을 난사해 장병 8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군당국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 가운데 김종명 소초장(중위)과 조정웅 상병은 내무반에서 떨어진 체력단련실과 취사장에서 김 일병이 쏜 총으로 변을 당했기 때문에 내무반에서는 6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한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조사결과로는 이 GP에는 사망한 김종명 소초장과 후임 소초장, 관측 장교 등 위관 장교 3명과 하사관인 부소초장 1명, 병사 26명(병장 2명, 상병 14명, 일병 8명, 이병2명) 등 모두 30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사고 당시 초소 경계 근무자는 김 일병을 포함 모두 4명이었고 상황실엔 후임 소초장 이모 중위 등 4명이 깨어 있었으며 취사장과 체력단련실에 각각 1명이 있었으므로 내무반에는 20명이 잠을 자고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GP 근무 경험자들은 천만다행임을 전제하면서도 사상자 수가 수류탄의 위력을 감안할 때 의외로 적은 것에 물음표(?)를 달았다. 8년 전 GP근무 경험이 있는 A(30)씨는 "규정대로 하면 그 시간에 내무반에 근무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자야 한다. 수류탄이 터졌는데도 사상자가 다행히 그 정도에 그쳤다면 일부 인원이 규정을 어기고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라고 의문을 던졌다. 즉 야간 인원통제가 제대로 이뤄졌느냐는 의문이다. 밤 10시면 일제히 취침을 하는 후방부대와는 달리 낮에 자고 밤에 근무하는 GP나 GOP(General Out Post:일반전초) 근무의 특성상 밤에 인원이동이 많아 통제가 어렵고 선임병 중에는 임의대로 취사장이나 체력단련실 등을 드나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GP 소초장을 역임했던 B(38)씨는 "수류탄이 침상위로 떨어졌다면 내무반에 있던 병사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부상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만약 바닥에 떨어졌다면 파편이 비산되는 반경이 좁아지기 때문에 사상자가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실탄ㆍ수류탄 내무반 반입 = 후방부대의 위병소나 탄약고 근무와는 달리 북한군과 직접 대치하는 GP와 GOP 근무자에겐 수류탄과 실탄이 지급된다. 북의 침투 징후가 보이면 바로 크레모아(적이 건드리면 자동으로 터지는 폭발물)→수류탄→사격 등 `즉각조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화기는 살상을 하거나 사고로 폭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병사들의 `생활공간'인 내무반에는 절대 반입할 수 없다. 따라서 초소 근무자가 어떤 이유에서건 내무반에 들어갈 때는 수류탄과 실탄을 간부(장교ㆍ하사관)에게 상황실 또는 실외에서 반납하고 안전검사를 해 소총의 약실에 실탄에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실제 일부 부대에서는 내무반 입구에 총기사고를 막기 위해 `탄약 제지선'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병사에게 수류탄과 실탄이 든 탄창을 회수한 간부는 실탄 갯수 등 이들 무기의 이상유무를 점검한 뒤 상황실에 마련된 간이탄약고에 보관하고 열쇠는 목에 거는 방법으로 항상 휴대하도록 돼 있다. 이유를 불문하고 군대에서 병사가 지닐 수 있는 무기인 실탄과 수류탄은 `간부에 의한 출납'을 철칙으로 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김 일병이 실탄과 수류탄을 내무반에 반입할 수 있었다는 것은 평소 이 GP의 탄약관리에 허점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GP 소초장 출신의 C(37)씨는 "다들 피곤한 GP는 외부 순찰자가 항상 감시를 하는 GOP보다 부대관리가 오히려 느슨하다"며 "귀찮은 업무인 탄약 출납을 병사들에게 맡기는 경우도 흔하다"고 털어놨다. C씨는 "해가 진 뒤 통문만 잠그면 아무도 올 수 없기 때문에 규정이나 원칙은 아무래도 엄격히 적용하기 힘들다"며 "속칭 `FM'(Field Manual:야전 교범)대로 하면 병사들의 반발을 사기 때문에 융통성을 부리기도 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밀조근무'대신 `말뚝근무' = GP나 GOP 근무는 경계를 서야 하는 초소 수보다 `2인1조'로 된 경계조의 수가 하나 더 많은 밀어내기식 근무(밀조근무)를 서는 게 원칙이다. 따라서 경계를 서야 할 초소가 2개라면 3개조 6명을 경계조로 편성, 한조가 소초나 밀조대기 초소에 있다가 일정시간이 지나면 기존 소초 근무자를 미는 방식으로 경계를 해야 한다. 이는 초병의 피로도를 줄일 뿐 아니라 다음 초소의 초병을 밀어내려고 이동하면서 철책의 이상유무도 점검하는 효과도 있으며 경계조가 순환하면서 야간근무에 따른 졸음을 막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밀조근무를 하지 않고 2개 초소에 2개 경계조(4명)를 고정으로 세우는 이른바 `말뚝근무'를 세웠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고정식 근무는 근무자만 `희생'하면 근무인원을 줄일 수 있어 편법으로 종종 동원된다. GP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했던 D(28)씨는 "사수ㆍ부사수가 말뚝근무를 하다보면 간부의 순찰만 없다면 감시의 눈이 없기 때문에 초소에서 구타나 가혹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초소에서 근무교대를 하려면 바로 교대하는 게 아니라 전임 근무조와 후임 근무조가 10분 간 합동근무를 서면서 전방상황을 인수인계하고 공용화기에 대한 이상유무를 함께 점검한 뒤 전임 근무자가 초소에서 빠진다. 김 일병이 함께 근무를 서던 사수(선임병)에게 `다음 근무자를 깨우겠다'며 근무지를 이탈한 행위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말뚝근무를 서다보면 근무지 이탈도 관행적으로 이뤄진다는 게 GP근무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육군합동조사단은 20일 브리핑에서 "소초장이 임의로 지시해서 고정근무(말뚝근무)식으로 시켰던 것이 규정에 어긋났다"며 이 GP의 밀조근무를 시인했다. ◆ 상황실의 위치 = 각종 유무선 통신시설과 간이탄약고가 설치된 상황실은 GP나 GOP 소초의 `머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24시간 내내 상황병이 자리를 비워서는 안되고 긴급상황에 빠르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선임병을 상황병으로 임명해야 한다. 군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사건이 난 GP의 상황실은 막사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데다 내무반하고도 분리됐다. 이렇게 되면 병사가 마음대로 탄약을 갖고 내무반에 들어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상황병이 내무반의 상태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허점이 있다. 두 공간이 떨어져 있다면 상황병은 다음 근무자를 깨워야하면서도 상황실을 비울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말뚝근무'를 서는 근무자에게 다음 근무자를 깨우도록 하는 편법을 쉽게 쓸 수 있다. GP부대의 중대장 출신인 E(39)씨는 "내무반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상황실을 거쳐가도록 해야 탄약반입을 막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뉴스를 보니 한참 떨어져 있어 왜 이렇게 상황실을 배치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 그 시간 취사장에 있던 병사는 = 사건발생 시간은 새벽 2시30분께였고 사망자 가운데 취사병인 조 상병은 취사장에서 나오다가 총을 맞았다. GP근무자는 BMNT(해상박명초:일조시간 30분 전)±30분 간 전원투입 근무를 선다. 사고 당일 BMNT는 오전 4시였기 때문에 병사들은 새벽 3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환자를 제외하고 모두 일어나 초소에 투입되야 한다. 전원투입을 마친 뒤에는 새벽 이슬을 맞은 장비를 정비한 뒤 7시께 아침을 먹고 최소 근무인원을 남겨두고 잠을 잔다. 따라서 취사병이 새벽 2시30분에 취사장에 있었다는 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반야(해질 무렵∼자정) 근무자가 후반야(밤 11시30분∼해뜰 무렵 ) 근무자와 교대를 하고 야간 간식을 먹고 난 뒤 설거지를 했다고 해도 적어도 새벽 1시30분엔 취사병의 일이 끝나기 때문이다. 2년 전 사건이 난 사단 GP에서 근무한 F(31)씨는 "그 시간에 취사장에 병사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취사병의 위치와 사상자 가운데 병장급이 없는 걸 보면 새벽 1시까지 세계청소년축구 한-브라질전(戰) 경기를 본 뒤 몰래 회식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물론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방송된 청소년 축구경기를 본 것도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GP 근무 경험자들은 "등화관제를 하고 축구경기 뿐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