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이 화려하게 북한무대에 데뷔했다.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민족통일대축전에 우리측 당국 대표단을 이끌고 처음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장관으로 취임한 지난해 7월 곧바로 불거져 나온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 파문과 탈북자 대량 입국, 그리고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 제정 등 연이은 대내외 악재로 남북관계가 급랭하면서, 적지 않은 속앓이를 해온 정 장관으로서는 취임 11개월여만에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린 셈이 됐다. 특히 장관 취임 전 통일부와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를 둘러싸고 김근태(金槿泰) 의원과 자리다툼설까지 불거져 나온 터였기 때문에 사실 통일부 장관 취임 전부터 `꼬임의 연속'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정 장관은 지난 해 12월 15일 주방기기업체인 리빙아트의 시제품 생산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했지만 연설 도중 북한측 대표가 자리를 뜨는 가 하면 북측 언론 역시 자신의 개성공단 방문 사실조차 언급치 않는 등 노골적인 푸대접을 경험해야 했다. 올들어 남북관계 소강상태는 감정적 측면에서라기 보다는 핵 문제로 인한 여파 때문이었다. 지난 2월 10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중단 선언과 3월 31일 핵무기 군축회담 제안, 5월 11일 영변 원자로 폐연료봉 인출 완료 발표 등으로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급기야 지난 달 북핵 사태가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불구, 남북대화가 장기간 중단돼 있다면서 "남북관계 진용을 다시 짜라"는 야당측 요구가 잇따라 터져나왔고 개인적으로 노모를 잃는 슬픔까지 겹쳤다. 그러나 사실 대북 관계 해빙을 위한 정 장관의 노력은 지난 해 연말부터 암암리에 본격화됐다. 그는 지난 해 11월 이후 지난 달까지 림동옥 북한 통일전선부 제1부부상 앞으로 당국간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개인 서한을 두어 차례나 발송한 것으로 알려진 것을 비롯, 공식.비공식 루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북측에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이 같은 정 장관의 노력 탓인지 북측의 냉랭한 태도는 올들어 점차 풀리기 시작해 조문불허 등에 대한 비난이 자취를 감춘 것은 물론, 비무장지대내에 남측 헬기의 진입과 우리측 해경 함정의 북측 영해 진입을 허용하는 등 긍정적인 사인들까지 보내기 시작했다. 북측은 마침내 지난 달 14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차관급 회담을 재개하자는 우리측 요청에 호응하면서 10개월여에 걸린 당국간 대화 단절의 시기는 막을 내렸다. 정 장관은 다음 날인 15일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의 답답했던 소회를 밝히면서 연거푸 세 차례 건배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후 지난 달 16∼19일 차관급 회담(개성)과 지난 14∼17일 평양 민족통일대축전, 그리고 오는 21∼24일 제15차 남북장관급 회담(서울) 등 남북 당국간 대화가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평양 출발에 앞서 "이번 행사는 회담이나 협상이 아니라 6.15를 기념하는 행사 그 자체이며 그 것이 방북 목적"이라며 "6.15 행사를 거쳐 장관급회담을 잘 해 남북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단숨에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서히 관계정상화와 북핵문제 해결 등을 달성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됐지만 정 장관은 평양방문 마지막 날인 17일 오전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조깅하다가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라는 쾌보를 접했다. 성과없이 빈손으로 돌아왔을 경우, 경력에 엄청난 흠집이 남을 뻔한 평양행이었지만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됨에 따라 자신의 이력에 오히려 큼지막한 `경력'을 하나 덧붙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ci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