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상 처음으로 2인 이상 후보의 대선 출마를 가능케 하는 개헌안 찬반 국민투표가 25일 전국 26개주(州)에서 일제히 실시된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국내외의 개혁압력에 밀려 지난 2월 대선 관련법 개정을 약속했다. 의회에서 가결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과반 지지를 얻으면 제도상으로는 공화제 도입 53년만에 처음으로 2인 이상 후보가 오는 9월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된다. 그러나 야당은 개헌안의 독소조항이 야당과 무소속 후보의 당선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며 전국적인 국민투표 보이콧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는 대통령 선거제도의 개정이라는 단순 의미를 넘어 무바라크 대통령의 24년 집권에 대한 신임투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무바라크, 투표 참가 호소 = 무바라크 대통령은 국민투표 전날 TV 녹화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정치개혁 과정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국민투표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중대한 순간"이라며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되면 민주주의의 새 길을 열고 국가의 독립을 보장하게 된다고 역설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여러분이 국민투표를 통해 국가의 새로운 내일을 만들고, 우리 정치생활에 새롭고 넓은 지평을 여는데 참가할 것으로 전적인 확신을 갖고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된 것은 국민 과반수가 1인 이상의 후보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국민 대다수가 개헌안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야권, 국민투표 불참..개혁시위 계획 = 최대 이슬람 정치운동단체인 무슬림형제단과 주요 제도 야당들은 국민투표 거부 연대전선을 구축해놓고 있다. 이들은 개정 선거법이 야당과 무소속 후보의 출마기회를 극도로 제한하고 여당 후보의 당선을 보장하는 내용이라며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야권은 대선 입후보 자격을 완화하고 투표를 연기하거나 헌법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개헌안을 새로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과 주요 야당인 와프드, 타감무, 나세르당은 지난 17일 국민투표 보이콧을 선언하고 국민들에게 투표 불참을 촉구했다. 여기에다 `스타 정치인' 아이만 누르가 이끄는 알-가드와 범야 정치연합세력인 키파야운동도 국민투표 불참에 동참했다. 누르 대표는 이슬람계와 좌우익을 망라한 모든 정치세력들이 단결해 무바라크 대통령의 24년 집권에 반대하는 `야당 전선'을 구축하자고 촉구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군중시위를 주도해온 키파야운동은 국민투표 당일 20개주(州) 법원 앞에서 "평화적인 침묵시위"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야당들 뿐 아니라 법관과 대학교수, 엔지니어, 변호사 등 지식인 단체들이 줄줄이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여서 국민투표는 정부 여당만의 반쪽짜리 정치행사로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 야당인사 검거선풍 = 정부당국은 국민투표 하루전까지도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압박을 늦추지 않았다. 경찰은 24일 카이로에서 국민투표 불참을 촉구하는 전단을 배포하려던 형제단 관계자 15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지난 3월부터 무슬림형제단 관계자들과 지지자들에 대한 대대적 검거작전에 나서 지금까지 960여명을 연행, 구금했다고 무슬림형제단측은 밝혔다. 경찰은 지난주 무슬림형제단 15인 지도위원회 사무총장이며 최고 지도자 모하마드 마흐디 아키프에 이어 사실상 2인자인 마흐무드 이자트를 연행, 구금했다. 이자트는 1996년이후 경찰에 연행된 형제단 최고위 인사다. 당국은 투표장으로 사용될 전국 각주 학교 주변에 경찰을 증강 배치해 놓고 야당의 시위와 우려되는 선거폭력에 대비하고 있다. 카이로 시내 주요 건물과 광장 등 공공장소에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형 초상화와 그를 지지하는 구호 "나암(예스), 나암 무바라크"가 적힌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