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탁구선수권 여자단식 16강전에서 `녹색테이블 기적'의 주인공 문현정(21.삼성생명)이 풀세트 접전을 펼친 리지아오(네덜란드)에게 결국 3-4로 지자 문현정과 벤치를 봤던 현정화 코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전날 세계선수권 3연패를 노리던 세계 2위의 옛 `탁구여왕' 왕난(중국)을 4-3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지만 이날 다 잡은 경기를 아깝게 내줘 8강 길목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기 때문. 현정화 코치는 패배의 아쉬움에 눈물을 글썽이며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문현정을 위로하며 자신도 눈시울이 붉어졌고 다시 한번 세계 제패를 위해 뛰자고 문현정의 손을 굳게 잡았다. 단식과 복식, 혼합복식 모두 8강 관문도 뚫지 못하고 선수 전원이 탈락한 참담한 성적표는 한국 여자탁구의 현주소. 하지만 현 코치와 문현정은 이번 대회에서 한 가닥 희망을 발견했기에 실망하지 않는다. 지난해 아테네올림픽 여자복식 은메달 콤비 이은실과 석은미가 올해 초 은퇴한 뒤 대표팀은 올림픽 단식 동메달리스트 김경아와 전혜경을 제외한 4명의 선수가 모두 세계선수권 처녀 출전일 정도로 급격한 세대교체의 진통을 겪고 있는 상태. 중국과 유럽의 정상급 선수 등 강적들이 우글거리는 험한 정글에서 살아남기란 애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지난 93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 단식 정상에 오르며 세계 여자탁구를 호령했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현정화 코치도 채 1개월이 되지 않은 짧은 훈련 기간에 선수들의 실력을 하루 아침에 끌어올리는 건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세계의 높은 벽에도 주눅들 지 않았고 실업 3년차로 세계 52위인 문현정은 중국 탁구의 자존심이었던 왕난을 꺾는 대회 최대 이변까지 연출했다. 현정화 코치는 워낙 실력차가 많이 나 강도높은 훈련으로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만 주력하고 상대 선수에 대해 분석할 시간조차 없었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현 코치는 "당장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쪽에만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중국과 유럽 선수들의 구질에 충분하게 준비하지 못했다. 오늘 경기에서 현정이가 구질 적응이 늦게 된 것도 내 책임이 크다"며 문현정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 했다. 현 코치는 이어 "한국 여자탁구가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지만 결코 무너지지는 않는다. 이번 대회에서 얻은 자신감을 발판삼아 다시 한번 세계 제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현정도 "전날 왕난과의 경기는 부담없이 한 게 오히려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오늘은 이겨야 한다는 욕심이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7세트 듀스에서도 승부를 빨리 끝내려고 서두른 게 잘못이다. 한국 여자탁구를 하루 빨리 끌어올릴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하겠다"고 다짐했다. (상하이=연합뉴스) 이동칠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