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거구의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겁없는 고교생' 이진권(18.중원고 3년)이 성인대회 데뷔 무대인 제48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본선 1회전(128강)에서 유럽의 '강호' 파트릭 쉴라(프랑스)를 꺾는 '녹색테이블의 기적'을 연출하자 경기를 지켜봤던 탁구 관계자들이 표현할 말이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고 성인 국제 무대에 첫 선을 보인 이진권의 이번 대회 당초 목표는 예선 라운드를 통과하는 것.

수 많은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정글숲을 헤치고 본선 1회전 관문을 통과한다는 건 욕심처럼 여겨졌다.


이진권이 풀리그로 치러진 예선 1라운드를 무실세트의 3전전승으로 통과한 뒤 2라운드에서도 터키의 이판 타부쿠오글루를 4-1로 제치고 본선행 티켓을 따낸 것만 해도 첫 대회 성적치고는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본선 첫 관문인 128강 상대가 세계랭킹이 무려 170위나 앞선 세계 33위의 쉴라로 정해지자 본선 1회전 승리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왼손 셰이크핸드 쉴라는 36세로 탁구에선 많은 나이지만 한 때 세계랭킹 10위권을 유지하며 최근까지 유럽선수권 4강에 꾸준히 얼굴을 내밀던 베테랑.


그러나 오른손 셰이크핸드 이진권은 예선 4전 전승의 자신감과 젊은 패기가 노련함으로 무장한 쉴라의 높은 벽도 뛰어넘은 `무명 반란'을 일으켰다.


이진권은 예리한 백핸드 드라이브와 재치있는 네트 플레이로 시소게임을 벌인 1세트를 11-8로 따내는 기선을 잡았으나 쉴라의 노련한 플레이에 말려 2, 3, 4세트를 내리 빼앗겨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조급한 플레이로 범실이 잦았던 이진권은 욕심을 버리고 여유있는 플레이로 쉴라를 압박, 5, 6세트를 이겨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뒤 9-9 에서 구석을 찌르는 포어핸드 드라이브와 쉴라의 공격 실패로 결국 본선 첫 승의 감격을 누렸다.


2004아테네올림픽 때 남자단식 금메달 쾌거를 이룬 유승민(삼성생명)이 `탁구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던 내동중 3학년 시절 처음 참가한 `97맨체스터 세계선수권 128강에서 탈락한 것에 비해서도 오히려 나은 성적이다.


유남규 남자팀 코치와 유승민으로 이어진 한국 남자탁구의 에이스 계보를 이을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남규 코치는 "백핸드 드라이브가 날카롭고 나이에 비해 경기 운영능력이 뛰어나지만 결정적인 한방을 해줄 포어핸드의 파워가 약한 게 흠이다. 잘만 다듬으면 세계 무대에서 한국 탁구를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진권은 "처음부터 쉴라를 이기려는 조급한 마음에 범실이 많았지만 욕심을 버리고서 제페이스를 찾았다. 고비를 잘 넘겼으니 이제는 16강까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단식 뿐 아니라 복식, 혼합복식에서도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상하이=연합뉴스) 이동칠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