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이 최근 국세청이 조세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 국세청과 한국조세연구원이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인 조세연구원은 국세청의 조세정보 비공개는 과거 일제시대와 유신정권의 잔재에 해당된다며 그동안 무시당하면서 참았던 `설움'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국세청은 납세자의 과세정보를 유출하는 것은 현행법 위반이기 때문에 자료공개가 어렵다면서 조세관련 통계는 지금까지 계속 확대해 왔다고 되받아치고 있다. 한편, 한 부총리는 지난 25일 열린 전국세무관서장회의 축사에서 "국세청은 납세자 비밀보호와 공정한 세정이 저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세제와 세정발전에 유용한 조세정보를 전향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밝힌 바있다. ◆ 재경부.조세연구원 "국세청에 불만" 조세연구원은 국세청으로부터 그동안 `설움'과 `무시'를 당한데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조세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입수하기 위해 국세청에 직접 요청하면 거절당하기 일쑤였는데다 `힘' 있는 재경부 세제실을 통해 요구해도 원하는 자료를 확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특히 국세청이 조세불형평 등의 과세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을 걱정해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세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국세청이 이전보다 조세정보를 많이 공개하는 등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아직은 멀었다"고 평가하고 "국세청은 국세통계연보를 통해 조세정보의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으나 국민이나 연구기관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세청이 조세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는데는 역사적인 배경도 있다"면서 "일제시대 당시 국가는 (세금을 부과하면서도) 국민들에 의해 부정당했고 유신시대에는 불공평과세가 드러나는데 따른 부담이 컸기 때문에 조세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들은 세금을 내는 주체로서 본인외의 다른 사람들은 세금을 어느정도 납부하고 있는지, 납부한 세금은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 등을 알 권리를 갖고 있다"면서 "이는 국민들의 당연한 납세주권에 해당되는 만큼 국세청은 이를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조세연구원의 다른 관계자는 "국세청으로부터 자료를 제대로 확보하는 것은 `숙원사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다"면서 "국세청이 자료를 내주지 않고 있어 통계청 등의 설문형식 조사결과나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 등을 통해 연구작업을 진행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와 함께 재경부가 부총리 축사를 통해 조세정보 공개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도 그동안 국세청으로부터 자료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데 따른 불만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무엇을 공개해야 하나 조세연구원은 실질적으로 ▲계층별 조세부담이 어떤지 ▲조세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앞으로 개선해야할 세제와 세정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고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국세통계연보로는 이런 분석과 연구작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조세연구원의 설명이다. 조세연구원 관계자는 "분야별, 세목별 자료가 보다 상세하게 공개돼야 한다"면서 "조세통계연보를 통해 과세구간별 세금 등이 나오고 있으나 실태파악과 연구에는 도움이 안될 정도로 포괄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조세연구원의 다른 관계자는 "예를들어,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되면서 계층별로 재산세.양도세.소득세 등 각종 세금합계가 어떻게 되는지 등도 분석할 필요가 있으나 관련자료를 구할 길이 없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샘플 데이터를 일반에 공개하고 있어 연구자 뿐아니라 납세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개인정보가 누설되지 않는 범위에서 필요하다면 5천∼1만건의 샘플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자료가 있어야 법인세를 내릴 경우 전반적으로 납세자들과 세수, 국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근로자들의 세금납부는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포착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자영업자는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는지, 면세점은 어느정도이고 면세점이하 분포도는 어떤지, 전반적으로 납세자들의 세금 불형평성은 어느정도 인지를 판단할 수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국세청, 개인정보 비밀 유지해야 국세청은 그러나 조세정보를 잘못 공개할 경우 개인의 과세정보가 누출될 위험성이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세청은 국세기본법 제81조 8항의 `비밀유지' 조항을 내세우고 있다. 이 조항은 `세무공무원은 납세자가 제출한 자료나 국세의 부과 또는 징수를 목적으로 업무상 취득한 자료는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외의 용도로 사용돼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세관련 통계는 국세통계연보를 통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개인 과세정보가 누출될 위험성이 있는 정보는 현행법상 내놓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익명으로 처리된 과세관련 통계는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쉽게 당사자가 확인될 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세통계 공개범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그러나 납세자의 비밀보장 문제 때문에 어느 정도 공개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관련, 재경부 관계자는 "한 부총리가 과세정보 공개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연구기관들이 관련 연구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정보가 공유돼야 한다는 뜻"이라면서 "그러나 국세청은 관련 프로그램이 완비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경부나 연구기관, 국민 등이 원하는 자료를 쉽게 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