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과정법과 생략법을 써서 가볍고 단순하고 감칠맛나게 표현하기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한다. 비록 나이가 어리다 해도 애정만화의 주인공을 보면 왠지 가슴이 설레고, 명랑만화를 읽으면 기분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글과 그림을 동시에 구사하는 만화가의 상상력에 독자들이 빠져들기 때문이어서다. 만화 매니어들은 우리 주위에 많다. 이들은 아직도 과거 청소년기에 밤잠을 설쳐가며 돌려 읽었던 여러 만화들을 잊지 못한다. '공포의 외인구단'(이현세) '어사 박문수'(신동우) '맹꽁이 서당'(윤승운) '개구쟁이 땡이'(임창)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면서 나름대로의 추억이 얘기되곤 한다. 특히 만화가 붐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였다. 한 스포츠신문이 연재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하나인 '수호지'가 기폭제가 됐다. 송나라 말기 1백8명의 호걸이 양산박에 모여 부패한 조정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정치 상황을 풍자한 것이라 해서 아쉽게도 미완성으로 끝났다. 임꺽정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 등 수십편의 굵직굵직한 작품들도 독지들의 큰 사랑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만화의 전성기를 구가한 이 역사대하만화들은 고우영 화백의 작품들이다. 만화는 아동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성인들을 만화의 장(場)으로 끌여들인 것도 순전히 그의 공이다. 고 화백의 만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파격적인 전개를 펼치면서 특유의 해학과 풍자를 가미해서다. 또한 그의 손을 거치면 역사속의 인물들이 생생한 실물이미지로 둔갑했다. 삼국지의 관우는 폼나는 인물로 유비는 속 좁은 인물로 그렸는가 하면, 수호지의 반금련은 색기(色氣) 넘치는 요부로 독자들을 사로 잡았다.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며 국민만화가로 통했던 고 화백이 엊그제 타계했다. 3년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서도 "창작엔 은퇴가 없다"며 70년대 삭제된 작품의 복원판을 내는 등 작품활동에 몰두해오던 그였다. 정사와 야사를 뒤져가며 우리의 거전들을 독특하게 재해석해 만화의 재미를 더해주고 아울러 새 지평을 열어준 고 화백의 명복을 빈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