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편의를 높이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IT)이 집단간 불평등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한 세계적인 `IT 강국'이 오히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 것으로 지적됐다. 황준욱 노동연구원 연구위원과 최강식 연세대 교수 등 전문가 6명이 공동으로 연구ㆍ집필해 25일 발간한 『정보통신기술과 일다운 일』이라는 노동연구원 정책연구서에서 이런 주장이 제기됐다. 이 연구서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일다운 일'(자유롭고, 안전하고, 평등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환경속에서 하는 생산적인 일)과 IT와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대비 IT 소비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고 이런 IT 투자 확산은 남녀 간 임금 격차나 작업장 안전 등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나 고용과 임금에 있어서는 심각한 격차를 초래했다. 기업의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높은 인지 기능을 요구하는 경영자, 전문직, 숙련기술직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 상대적 고임금을 누리게 된 반면 반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근로자들은 고용 불안과 상대적 임금 저하를 동시에 겪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기업들의 상시 고용조정이 이뤄지고 보상체계나 교육훈련 투자도 고직능 근로자 위주로 변화돼 고-저(高-低) 직능간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비정규직 등 취약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전사적 생산정보시스템을 활용해 모든 생산과정을 관리하고 있는 A자동차업체는 시스템 생산관리직은 고도의 지식과 숙련을 쌓게 되는 반면 생산직 노동자는 업무의 단순화로 숙련 축적이 불필요해 노동자 간 숙련도 격차를 크게한 것으로 분석됐다. 휴대전화를 생산하고 있는 B기업의 경우는 IT 관련 기술의 중요성 확대가 경력직 우대 경향을 낳아 신입-경력직 간 고용 기회와 숙련도 형성에서 역시 격차를 벌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인터넷 포털서비스를 제공하는 C기업은 적극적인 IT 활용으로 노동자의 의사소통 참여가 활발해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냈으나 이는 `인터넷업체'라는 특수성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연구서는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IT가 산업ㆍ기업별 특성에 따라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나 집단 간 격차와 불평등을 야기시키는 등 노동의 질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연구서는 IT가 일다운 일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IT 도입과 활용에 있어서 도입자와 사용자 간 긴밀한 사회적 대화와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IT 도입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골고루 누리려면 교육훈련을 통해 노동자들의 지식과 정보에 대한 이해와 활용도를 높여야 하고 IT 발전속도가 빠른 점을 고려해 교육훈련도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h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