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002년 이후 23차례에 걸쳐 서울 강남을 겨냥한 크고 작은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을 내놨지만 강남 집값은 이에 주눅들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올 들어서는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의 종합판인 지난 2003년의 '10·29 종합대책'을 무력화시키며 강남권 집값이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11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9일까지 강남권 재건축아파트값 상승률은 강남구 10.59%,강동구 13.82%,송파구 17.7%,서초구 8.2% 등으로 조사됐다. 이는 집값 폭등기였던 지난 2002년 1~4월(10~17%)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로 강남권 재건축아파트들은 최근 들어서만 평형에 따라 1억~2억원씩 값이 올랐다. 일선 중개업소들은 올해 집값 상승의 특징으로 △강남권과 분당신도시 등 인기주거지역 △중대형 평형 △재건축아파트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양질의 중대형 아파트 공급부족이 인기주거지역의 중대형 아파트와 재건축아파트 가격을 폭등시키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게다가 그동안 내놓은 정부 대책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취득·등록세와 양도소득세 등 거래세를 큰 폭으로 인상하고 재건축아파트의 전매를 금지한 조치는 단기적으로는 가격 상승을 억제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매물부족 현상을 초래,미세한 매수세에도 집값이 폭등할 수 있는 구조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또 판교 동탄 파주 김포 수원 등에 2기 신도시를 조성키로 했으나 판교를 제외하고는 강남권 수요를 대체 흡수할 수 있는 곳이 없어 강남권 아파트의 희소가치만 더욱 높이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2기 신도시 중 첫 분양에 나선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경우 전체 계약자 중 서울 거주자는 10%선에 그쳤다. 게다가 판교신도시도 전용면적 25.7평 이하 중소형 평형의 비중을 전체의 72%로 높이고,전용면적 25.7평 초과 아파트에는 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한 채권입찰제를 도입함으로써 인근 분당신도시 뿐만 아니라 강남권 중대형 평형 집값까지 밀어올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부동산퍼스트의 곽창석 이사는 "정부가 중장기 대책이 아닌 단기 대증요법에 의존하다보니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며 "이제는 웬만한 대책으로는 초동진압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강남·분당권 집값 급등 현상이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렸다는 점이다. 정부의 인위적 가격 억제 정책이 더 이상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확인시켜줬을 뿐이다. 이 때문에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이 '앞으로 집값이 오른다'는 소리로 들린다는 자조섞인 한숨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값 안정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내건 참여정부마저 시장 앞에서 무력해지자 소비자들의 불안심리가 더욱 증폭되면서 집값이 뛰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양질의 아파트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지 않는 한 '강남 불패' 신화를 잠재우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입지여건을 갖춘 곳에서의 공급확대가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주문이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