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평화방송ㆍ평화신문 펴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해 몇 차례 언급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김 추기경은 회고록에서 "교황님은 신앙과 정신 세계가 참으로 깊고, 두뇌가 명석한 분이다"며 "주교 시노드 상임 위원회에서 3년 동안 함께 일했기 때문에 교황에대해 잘 안다"고 털어놓았다. 김 추기경은 "언젠가 상임 위원회 회의를 하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틈만 나면 토론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책을 펴놓고 독서 삼매경에 빠졌는데도 자신의 옆에 앉아서 발언할 때면 빈틈없이 적절한 말을 하는 등 회의를 잘이끌어갔다는 것. 교황은 1984년 한국교회의 창립 200주년 기념행사와 한국 순교 복자 103위를 성인 반열에 올리는 시성식 참석차 4박5일 일정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감동적인 장면을 여러 차례 선보였다고 한다. 한번은 대구로 가는 비행기에서 교황은 김 추기경과 몇 마디 나누고 곧바로 성무일도(聖務日禱)를 펴고 기도에 들어갔는데, 시간이 흐른 뒤 수행원들이 돌아봤더니 여전히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것. 김 추기경은 "비행기가 아니라 성당 같았다"고 회고한다. 교황은 1989년 서울에서 열린 '가톨릭 올림픽'격인 세계성체대회 참석차 두 번째로 방한했다. 김 추기경은 성체 대회 직후 로마에서 교황을 만났을 때 "성체 대회가 매우 아름다웠다"는 칭찬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특히 교황 순방 때마다 동행하는 수행팀은 김 추기경에게 "교황님을 모시고 수십 개국에 다닌 우리가 '아름다운 나라(행사) 베스트 3'를 뽑아놓았다. 1위를 교황님께서 취임 직후 방문하신 고국 폴란드다. 2위는 1984년 한국 200주년 신앙 대회,그 다음은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만 70세가 되던 1992년 서울교구장직에서 물러나고 싶다며 교황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얼마 후 교황은 장문의 친서를 김 추기경에게 보내왔다. 편지에는 "무슨 뜻인지 알겠으나 교구를 위해 좀더 봉사해주십시오. 정 힘들면3개월이건, 6개월이건 장기 휴가를 다녀오십시오. 휴식은 꼭 필요합니다.나를 보십시오. 김 추기경보다 두 살이 많은 나도 이렇게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쓰여있었다.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anfou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