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 교수ㆍ공법학 > 요즈음 뜻있는 사람들은 근심이 많다. 지금 이 시점,이 자리에서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두렵고 우울한 사람들이 많다. 넓게는 한반도의 운명이 불확실하고, 좁게는 대안 없이 꼬여 돌아가는 각종 국정 현안들이 이제 막 기지개를 켤 듯하던 경제와 살림살이의 회복 전망을 뿌옇게 흐려 놓는다. 우리는 이제 행정도시란 이름의 희한한 수도분할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불거진 한·일 불화가 어떤 후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타개할 방도나 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정부는 동아시아의 균형자 역할을 자임한다. 북한은 악으로 우리식만 고집하다 조류독감에 감염돼 비실대기 시작한다. 조건부 6자회담 복귀의 수사는 차라리 안쓰러울 뿐이다. 본시 순진하지도 않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닳고 닳아 더 이상 속지 않는 미국은 지갑을 열 생각도, 악수를 건넬 선의도 없다. 그 와중에 남한은 대일외교전을 불사한다며 그러잖아도 불안하기 짝이 없던 한·미·일 공조의 틀마저 일없다 할 기세다. 미국과 일본은 군사 외교에서 보기 민망할 만큼 밀월을 구가하는데.외교의 포스트 모던 해체주의라고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그저 불안할 뿐이다. 국가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손자나 제갈공명이 중시한 천시란 바로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정책도 성공은커녕 불의의 결과로 대사를 그르칠 수 있다. 특히 상대가 여럿일수록, 문제가 복잡할수록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타이밍이 제대로 맞는지 의심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 정치 경제 교육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정부 처방 가운데는 타이밍이 잘 맞지 않는 듯한 것이 적지 않았다. 일본과 일전불사를 결의한 대통령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도 감명을 주지만 타이밍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다음 단계엔 어찌할 건지, 한·미·일 공조는 어떻게 할 건지 뒷일이 걱정이다. 타이밍은 정책과정 전방위에서 조율해야 한다. 물론 입법이나 정책은 거의 모두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처방이기 때문에 원천적 부분적으로 실기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대세를 그르치지 않도록 적기에 처방을 내리는데 있다. 그러려면 우선 사태를 냉철하게 분석, 판단해야 하고 향후 추이에 대한 장단기 전망이 필요하다. 참모들 끼리끼리의 구수회의만으로는 자칫 집단사고(group think)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가능한 한 최대한 들어야 한다. 둘째, 유효한 정책의 레퍼토리가 충실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 정부는 무엇을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관철시켜 나갈 수 있는지 평소에 늘 훈련이 돼 있어야 하고, 유사시 그 레퍼토리에서 효과적인 정책도구를 사태와 향후 전망을 토대로 타이밍을 맞춰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정책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미래를 예지하거나 점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가능한 지식정보를 총동원해서 최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그 예측을 토대로 예상되는 결과에 대한 대비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유능하고 훌륭한 참모가 필요하지만 최종 판단과 결정은 어디까지나 지도자의 몫이다. 지도자는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차갑습니다!'라는 광고문처럼 가슴조차 완전히 냉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식과 열정에 휘둘리는 것은 금물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앞으로의 일이다. 눈앞의 고지를 빼앗아야 한다는 집념으로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고 '돌격 앞으로'만을 외치는 사람은 좋은 지휘관이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더라도 국정의 타이밍을 적절히 조절하고 국민에게 언제 어디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면서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