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독도문제와 관련해 숨고르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지난 23일 일본과의 외교전쟁 불사를 선언한뒤 한일간에 예상을 뛰어넘는 메가톤급 파장이 일자 전날 "외교전쟁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해명한데 이어 25일은 시종 침묵을 지켰다. 앞서 노 대통령은 전날 문화관광부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할 말은 하되 한일간 경제적, 문화적 교류와 협력이 중단돼거나 위축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여야 지도부와 국회의장단을 청와대로 초청,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는 "외교전쟁이라고 할 만한 각박한 상황도 있을 수 있으니 함께 감당해 나가자는 취지의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분간 노 대통령이 독도문제에 대해 별도로 언급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기류는 극히 강경한 어조로 한일관계 전반에 대해 기왕에 많은 말을 쏟아낸 탓도 있지만 국내외적 정황을 감안할 때 강경 일변도로만 갈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노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 대한 국내 여론도 반드시 찬사 일색인 것만은 아닌게 사실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수십년묵은 체증을 한꺼번에 뚫리게 하는 듯한 `카타르시스효과'를 낳은 것은 사실이나 노 대통령이 사용한 용어와 내용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민감한 현안에 대해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응을 주문해야 할 정부와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미 불붙기 시작한 우리 국민의 반일 감정에기름을 끼얹어 양국관계를 파탄지경에 이르게 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거듭 언급하고 있는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은게 현실이다. `자주외교'라는 당위에 지나치게 비중을 둔 나머지 자칫 고립주의를 자초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 탈냉전 시대를 맞아 우리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동북아 중심국가로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공감가는 바이지만 과연우리의 역량이 그런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냉철히 살펴봐야 한다는 비판론도 없지않다. 특히 지난 90년대 후반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경험한 경제계에서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자칫 한일관계에 파국을 몰고와 모처럼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우리경제에 주름살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전경련 강신호(姜信鎬) 회장은 지난 23일 "노대통령께서 괘씸하다고 생각하고있는 것 같다"면서 "감정적으로 대응해 플러스될 것이 없다"며 `쓴소리'를 했다. 그는 나아가 "일본으로부터 물건을 사오고 있고 안판다, 못산다하면 서로 손해인 만큼 등 원만하게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우리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더욱이 한때 잠잠하던 일본 정가 일각에서도 `자위대 파견' 운운하며 극단적인 감정 표출을 보이기 시작해 자칫 양국관계가 수교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결국 노 대통령이 이날 침묵을 지키며 속도조절에 들어간 것은 이런 복잡한 국내외적 상황을 두루 감안, 신중하고도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할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전날 "외교가 기교적인 일이라지만 외교도 진실과 혼(魂)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대목은 곱씹어볼 대목이라는게 중론이다. (서울=연합뉴스) 조복래기자 cb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