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식 < 삼성토탈 사장 hs.ko@samsung.com > 옛날 독일에서 생활할 때의 일이다. 뒤셀도르프의 오버카슬이란 지역에서 세를 들었는데 4층집 맨꼭대기 다락방이었다. 하루는 집주인이 올라와 방이 지저분하다면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한시간에 10마르크라고 했다. 청소를 맡긴 다음날 퇴근 후 살펴본 집안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와이셔츠는 옷장에 잘 정돈돼 있고 카펫이 깔린 방바닥은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청결했다. 침대 위의 메모지에는 '머리카락 청소 때문에 두 시간이 걸렸으므로 20마르크를 놓고 가라'고 쓰여 있었다. 그 정직함과 완벽성이 놀라웠다. 낮에 청소를 하고 가기 때문에 한번도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본적은 없다. 그러나 누가 보든 안 보든 자기가 맡은 일을 철저하게 하는 독일인의 의식 수준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최근 우리 회사는 과·부장급 임직원 수십명을 캐나다 대학으로 연수 보냈다. 이들에게 의무적으로 민박을 하게 했다. 언어연수는 물론 선진문화를 몸소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캐나다는 2004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원들은 한결같이 캐나다 사람들의 생활습관에 놀랐다고 한다. '근검절약'과 '비즈니스 마인드'가 생활화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체감온도가 영하 40도를 밑도는 날씨에도 전기나 연료 히터를 사용하는 대신 옷을 한 벌 더 껴입는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것.또 화장실이나 세면장에는 타이머를 설치하고,커피 한잔의 물을 먼저 계량해 끓여 마시고,음식을 조리할 때는 반드시 정해진 방법을 따른다. 이런 선진질서를 경험할 때마다 소득 수준이 높기 때문에 선진질서가 유지되는 것인지,아니면 그들의 의식 수준이 높기 때문에 선진국이 됐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의 선진국이 되려면 첨단기술도 개발해야 하고 투자도 수출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식이 발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경제정책을 수립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독일을 생각하면 첨단기술이나 명품 자동차보다는 청소 아주머니가 먼저 떠오른다. 나부터,지금부터,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상식에 기초한 보편 타당성의 가치가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학교는 교육자적인 양심에 의해 운영돼야 하고,학부모는 자기 아이만 기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모든 집단에는 시기와 갈등보다는 건전한 경쟁이 넘치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통하는 보편 타당성의 가치관을 지닌 세계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앞에 지도층 인사가 나설 때 선진국 진입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