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최근 지근거리의 한 참모로부터 "12일이면 (탄핵) 1년이 됩니다"라는 말을 듣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대 야당에 의해 가결된 탄핵소추안의 피고인이자 최종 승리자이기도 한 노 대통령이지만,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 `기념일'을 조용하게 넘길려는 모습이다. 두 달여의 직무정지 기간 위로차 청와대 관저로 찾았던 여권 인사들을 불러 1년전을 되돌아보고 격려도 해줄 법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전당대회 기간임을 들어"여당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참모들은 오히려 "3월12일이 그날이냐", "벌써 1년이냐"고 되물을 정도로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사건은 적어도 청와대에선 잊혀진 과거사가 된 듯한 분위기다. 한 핵심 관계자는 10일 "1주년이란 점이 의미를 부여할 만한 계기가 되느냐"면서 "정치권 등 바깥에서의 평가 시도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적어도 우리쪽에서는 특별히 뭘 할 게 없다"고 말했다. `탄핵 1주년'에 대한 청와대의 무관심이 의도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노대통령은 지난 5월15일 업무복귀에 즈음해 발표한 대국민 성명에서 `탄핵'을 언급한이후 탄핵사태와 관련해 극도로 언급을 자제해온 것은 사실이다. 사석에서도 무심코 탄핵 얘기가 나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여권인사들의 전언이다. 지난달 25일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도 "갈등의 틈바구니에 낀 처지에서 언론과의 갈등, 열린우리당 창당, 대선자금 수사, 그리고 탄핵이라는 전에 없던 일들을,때로 결단하고 때로 감당해 왔다"고 회고한 것이 전부였다. 헌정 사상 초유라는 대통령 탄핵사건을 참여정부 출범 후 연속적으로 노정된 갈등상 중 하나 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탄핵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이 같은 `거리두기'를 놓고는 "아픈 상처를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 "정치적 공방 재연을 우려한 것"이라는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스스로 직무복귀 후 현실정치와 분명한 선을 긋고 경제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 때문이란 분석이 좀더 유력해 보인다. 실제 노 대통령은 여당이 탄핵을 계기로 초미니여당에서 과반 여당으로 달라진데도 불구하고 집권당 총재의 지위를 포기, 당.정분리를 실현한 데 이어 정치권의오랜 관행처럼 이어져온 영수회담에 대해서도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정치'와 사실상절연했다. 스스로의 공언과 다짐에 따라 노 대통령이 현실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사실상 봉쇄됐지만 이는 중장기적 과제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 확대로 이어지면서 `달라진 노무현', `뉴 노무현'으로 표현되는 국정스타일의 변화를 낳았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변화가 이미 탄핵안 가결과 함께 시작됐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지난해 4월11일 권한정지 한 달을 맞아 북한산을 오르면서 "마음에 담고 아웅다웅하는 것들이 다 부질 없는 것 같다"고 한 노 대통령의 고백이 그 근거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노 대통령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안정감을 보이고있다는 주장이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눈꺼풀 수술로 자연스럽게쌍꺼풀이 생기면서 인상도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1년 전 이맘 때 청와대에 칩거하는 자신의 처지를 오색찬란한 대자연에 대비시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탄핵 후 1년이 흐른 요즘 노 대통령이 진정한 `봄날'을 맞고 있다는 인식에 공감하는 이가 많은 게 사실인 것 같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