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기호 < LG화학 사장 > 얼마전 자신 적성에 따라 일류 의대를 중퇴하고 화학공학과에 재입학,졸업 후 국내화학기업에 입사한 한 학생의 기사를 보았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기업인으로서 가슴 뿌듯한 이야기였지만 그 학생의 결심이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쳤고 주위 사람들의 눈엔 불효를 저지르는 것처럼 보였다는 내용은 서글픈 마음이 들게 했다. 이런 이야기가 화제가 될 만큼 화학공학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바닥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화학공학과가 전성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광복이후 70년대 중반까지 화학 관련 기간산업들을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당시 고교에서 1등을 했다고 하면 거의가 화학공학과에 들어갈 정도였다. 지금은 어떤가. 70년대 이후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화학공학은 구조적인 위기를 맞으면서 취업도 쉽지 않고 최근에는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일반인들에게 화학은 환경오염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렇다 보니 최근 서울주요대학 화공과의 커트라인은 전기공학과,건축과,기계공학과등 다른 이공계학과보다 훨씬 낮은 바닥권을 헤매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학계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게 진짜 문제다. 우수한 화공학도가 절실히 필요한 곳은 바로 산업계이기 때문이다. 요즘 총체적인 이공계의 위기라고는 하지만 첨단 정보통신,전자업계는 관련학과의 인기만큼이나 우수한 인재들의 육성과 산업계로의 유입도 활발한 편이다. 하지만 화공관련 학계와 산업계는 이런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 된다면 화학산업계는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화학선진국들에 비해 큰 기술격차로 힘겨운 우리 화학산업계의 장래는 경쟁력 저하와 함께 심각한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현상이 화학산업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계 전반의 경쟁력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화공학은 모든 기술공학분야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중요한 기초분야인 까닭이다. 반도체 사업분야의 핵심공정은 화학공학 분야의 지식과 기술이 적용된다. 최근 발효된 기후변화협약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청정공정과 대체 에너지 개발이 필요한데 그 해답도 화공학에서 찾을 수 있다. 화공학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화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인 이미지 개선과 더불어 원활한 산학협력체계의 구축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화공학회를 비롯해 화학공학을 대변하는 여러 단체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화학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 초ㆍ중등학생들이 화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교과과정 개선에 노력하는 등 화학에 대한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나가면서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또 학계에서는 새로운 화학이론의 창출에 주력하는 동시,기업에 적합한 인재양성에 힘쓰도록 하고 기업들은 화학공학자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도 아끼지 않도록 학계와 산업계를 유기적으로 이어 주는 것도 화학공학을 대변하는 단체들의 중요한 역할이다. 정부차원에서도 화학공학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화학과 관련된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각도의 지원체계 마련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심각한 자원 빈곤국인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술강국이 되는 길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산업기술의 기반이 되는 화공학이 지금의 침체를 벗어나야만 한다. 미래 화학강국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화학공학인들은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서 화학공학의 옛 명성을 재현해야 한다. 미래가 보장되는 화학공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침체된 의학계를 살리기 위해 의대로 진학한 학생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게될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한국화학공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