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회에 알짜 공공기관을 가져가는 지자체는 벌떡 일어서지만 왕따당하는 지자체는 지금보다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강박감 때문에 지방들이 말 그대로 명운을 걸고 유치 경쟁을 벌 일 수밖에 없습니다"(송인성 전남대 교수) 정부가 충청권 행정도시 건설과 함께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을 지방도시로 분산시켜 지역 균형발전을 완성한다는 장미빛 구상을 펼쳐보이자 지방도시들이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정부가 ○○공사는 강원권,○○공사는 호남권,○○공사는 영남권으로 보낸다는 개괄적인 분산 계획을 밝힌 후 같은 지역 내에서도 서로 유치하려는 물밑 각축전이 뜨겁다. 전문가들은 "농업기반공사의 경우 같은 호남권에서도 여러 도시들이 경합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 이전이 같은 지역 내에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소(小)지역 갈등'을 폭발시킬 우려도 있다"고 걱정한다. 조재호 울산대 교수는 "중앙정부로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면 지역 균형발전에 기여한다고 보겠지만 개별 지자체들로선 공기업 유치 경쟁에서 밀리면 지역 불균형이 심화되고 상실감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과정에서 지역 갈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 운명을 건 유치경쟁 공공기관 이전은 시기적으로도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려 있어 지방 정치인들의 정치생명과 적지 않은 연관이 있다. 이로 인해 중앙정부를 향한 로비전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부산시의 경우 '해양수도론'을 앞세워 청와대를 비롯한 중앙으로 통하는 모든 채널을 '풀 가동'할 태세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최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국무총리실 등을 방문,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시의 입장을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한 데 이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도 초당적 협조를 요청했다. 부산 출신의 열린우리당 윤원호 의원과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 등도 최근 정부 부처와 한전 토지공사 등을 방문하며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전북도는 한전 주택공사 농업기반공사 등을 유치 타깃으로 잡은 뒤 중앙정부는 물론 이웃 전남도·광주시의 움직임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석탄공사 유치가 유력해지면서 춘천 영월 원주 등 지역 기초지자체들의 물밑 신경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신종 지역갈등…지역내 이전투구 광주시와 전남도는 공공기관 유치에 공동 보조를 취하기로 해 다른 지자체의 모범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합의 도출을 못해 결국 제 갈 길로 가게 됐다. 박광태 광주시장은 얼마 전 이해찬 총리와 면담하면서 광주와 전남 경계지역에 인구 5만명 규모의 신도시를 조성해 공동으로 공공기관을 유치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남도와의 이해관계 절충에 실패했다. 전남도는 지역 전체의 경제발전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고 보고 광주시 제의에 찬성했었지만 나주시와 장흥군 보성군 등 기초지자체들이 "광주는 전남에서 가장 앞선 지역인데 낙후지역 배려 성격의 공공기관 이전의 과실을 독식하려 한다"며 반발,'전남·광주' 합작이 무산됐다. ◆동빈서화(東貧西華) 우려도 강원 대구 경북 등 야당 지지 기반인 지자체들은 지역 균형발전의 과실이 집권 여당의 텃밭에 편중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같은 영남이라도 경남은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김해)이고 중부권과 호남권은 집권세력 인맥이 강한 지역이어서 한전 등 굵직굵직한 공사들을 끌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면서 대구·경북이 왕따당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큰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반면 광주·전남 등 서남권과 충청권에서는 정부가 추후 정치적 시비를 우려,오히려 역차별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김수언 기자·광주=최성국·대구=신경원·울산=하인식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