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허 모씨는 얼마전 출근 길에 접촉사고를 당했다. 자동차 뒷 범퍼가 파손됐을 뿐 신체적 외상은 없었다. 일단 출근한 허 씨는 허리가 뻐근해 인근 개인 병원에 들렀다. 병원측은 각종 사진을 찍고 검사를 한 다음 "전치 몇주를 원하시느냐","입원하시겠느냐"며 과잉친절을 베풀었다.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온 다음날 보험회사 보상 직원이 찾아 왔다. 용건은 "치료비는 얼마든지 드릴테니 제발 병원을 옮겨 달라"는 것."그 병원은 교통사고 전문병원이어서 힘들다"는 설명이었다. 교통사고를 이용한 보험범죄에 단골로 끼어드는게 병원과 의원이다. 이들은 보다 많은 수익을 올릴 목적으로 잘못이란걸 알면서 범죄에 편승한다. 물론 모든 병·의원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부 병·의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해이)는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모럴 해저드 실태 경남 동래경찰서는 작년 12월 3개 병·의원장 등 병원관계자 14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지난 2001년 1월부터 작년 11월까지 교통사고 환자 6천1백77명을 진료하면서 과당 진료 등을 일삼으며 5억원의 보험금을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동원한 수법은 다양하다. 우선 허위 치료 및 처치.병원장 등은 특정 입원환자에 대해 물리치료를 8회 실시하고선 13회 실시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했다. 주사를 한 번 놓고는 3번 놓은 것처럼 꾸미고 방사선 촬영횟수도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과잉진료 및 무자격 진료도 동원됐다. 의사의 처방전 없이 간호사 조무사 등이 약을 조제했는가 하면,방사선 기사 자격증이 없는 당직자가 방사선을 촬영하기도 했다. 경미한 교통사고 환자에게 3주간의 진단서를 발급하는 등의 허위진단서를 발급한 행위도 적발됐다. ◆'나이롱 환자'와 먹이사슬 서류상으론 입원실이 꽉 차있는데도 밤에는 거의 비어 있는 병·의원들도 있다. 속칭 '나이롱 환자' 때문이다. 나이롱 환자란 입원할 정도로 다치지 않았는데도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입원하는 환자를 말한다. 환자로서는 보험금과 보상금을 받아서 좋고 병·의원으로선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 좋다. 심한 경우엔 낮에는 직장에서 정상근무하고 밤에만 병원에서 잠을 자는 환자도 있다. 또 유령인물이나 통원치료 환자를 입원환자로 조작하거나 단기 입원환자를 장기 입원환자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적발된다. 실제 감독당국이 해마다 병·의원을 대상으로 서류상 입원환자 중 얼마나 병실을 비우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환자부재율은 20% 안팎으로 나타났다. 입원환자 10명 중 2명은 나이롱 환자인 셈이다. 이처럼 병·의원들의 모럴 해저드가 나타나는 것은 보험사기단,구급차업자,병·의원 관계자들간의 먹이사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부 병·의원 관계자들은 보험사기단이나 구급차업자와 결탁,환자를 유치하는 대신 이들이 원하는 대로 치료기간을 결정해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보험사 보상직원들도 이 먹이사슬에 합류하기도 한다. ◆원인 및 대책 병·의원의 지나친 수익추구가 주된 요인이다. 일부 병·의원은 수익을 늘리기 위해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특히 입원환자는 이들의 주된 스카우트 대상이다. 환자들도 입원일수가 늘어날수록 많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어 싫어하지 않는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이다. 이에 비해 불법의료 행위에 대한 수사는 수박 겉핥기식이 많다. 의료행위가 전문적 지식을 요하는 만큼 허위진료나 과장진료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환자들도 잘 협조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병·의원의 모럴 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선 병·의원에 대한 감시활동을 강화하되 제도적 장치마련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예컨대 자동차보험의 진료수가를 의료보험수가와 같게 한다든가,일정 규모 이하의 병·의원에 대해선 입원실 운영을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할만 하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