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에서 화려한 성적을 올리는 여자축구에밀려 자존심을 구겨왔던 북한 남자축구가 요즘 `강호 북한'의 불씨 되살리기에 나섰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권에서는 강팀으로 군림하던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여파로 국제무대에 거의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던 1990년대 들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펴기 시작해 최근 옛 영광을 조금씩되찾아 가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 축구는 2001년 중국 상하이 4개국 국제축구대회,2002년 태국 킹스컵축구대회, 2003년 이탈리아 세계군인체육대회 등에서 우승한 데이어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일본과 이란, 바레인 등과 같은 조인 북한은 최종예선을 통과, 1966년 영국 월드컵 8강을 다시 한번 연출하겠다는 각오다. 북한의 옛 명성 찾기는 수천 명의 성인선수, 10만여 명에 이르는 축구 꿈나무를가진 두터운 선수층이 그 기반으로 되고 있다. 북한 축구관계자도 "해마다 실력이향상되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고 밝힐 정도로, 북한축구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다. 북한은 광복 직후부터 축구에 관심을 돌려 왔다. 고(故) 김일성 주석이 1946년 11월 축구 대중화에 힘쓸 것을 역설한 것이 계기가 돼 1947년 10월 축구선수권대회를 비롯해 각종 축구대회가 활기차게 개최됐다. 특히 1960년대 후반 들어서는 대외교류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됐다. 북한의 축구 육성정책과 강호 소련ㆍ헝가리ㆍ베트남 등 동유럽 및 동남아 국가들과 교류를 하며 실력을 닦아온 북한은 이 과정에서 전면공격ㆍ방어에 의한 빠른 축구라는 전술을 확립,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으며 아시아 최초로 8강에 오르는 눈부신 성적을 일궈냈다. 월드컵 8강 이후 북한에서 축구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 붐을 타고 압록강ㆍ평양시ㆍ제비ㆍ2.8 체육선수단 등 실업팀들이 전성기를 주도해 나갔다. 북한 체육계가 "세계적 수준에 확고히 도달했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뮌헨 올림픽 예선에서 탈락, 큰 충격을 받았고 1972년 4.25체육선수단을 창단해 제2의 도약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실적 없이 월드컵무대에서 벌어지는 남의 잔치를 지켜봐야만 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연식 기자 j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