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면 설이다. 설이 지나면 곧바로 개학이니 초·중·고생들은 설날에도 바쁘게 생겼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 방학책은 없어졌지만 만들기와 독후감쓰기같은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독후감도 인터넷 곳곳에서 퍼다가 짜깁기하는 일이 흔하다지만 그것도 간단하진 않을 것이다. 독서는 기실 누가 시키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경우 엄마가 골라주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책은 내용이나 품질에 상관없이 잘 팔리는 반면 10대 이후 스스로 선택해 읽는 책의 판매량은 뚝 떨어진다고 한다. 게임 등 재미있는 놀이가 수두룩한데다 독서가 공부를 방해하는 가욋일로 여겨지기 일쑤인 탓이다. 그러다 보니 독후감 쓰기를 방학과제로 내줘서라도 읽게 하는 셈인데 수많은 요약본과 인터넷 덕(?)에 의도하는 대로 되는 것같지 않다. 고전이라도 이해하기 어렵거나 절판돼 구하기 힘든 책을 권장도서로 제시하거나, 기껏 써냈는데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채 넘어가는 것도 초·중·고생들의 독서에 대한 흥미를 가로막는다. 결국 대학생 혹은 사회인이 돼도 마음속에 간직한 책 한권 없는 수가 허다하다. 제목과 대략의 내용은 알지만 정작 읽진 않아 첫 문장이 어떻게 시작되는지,가슴 깊이 와닿는 대목이나 문구는 무엇인지 모르는 일도 태반이다. 책은 안읽고 영화나 드라마로 보는 바람에 책과 다른 내용을 기억하기도 한다. 서울대가 재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백선'을 내놨다. 분야별 교수 20여명이 1년여 검토해 만들었다는 목록의 한국문학엔 '구운몽''춘향전'부터 이기영 백석의 작품,서양사상엔 헤로도투스의 '역사'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들었다. 얼마나 고심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제아무리 유명한 책도 읽히지 않으면 곤란하다. 전공서적이 아닌 교양서적이면 더더욱 그렇다. 책이란 옛것을 아는데도 중요하지만 오늘과 내일을 이해하는데도 필수적인데 동시대 저자의 책이 거의 없는 것,예술 경제경영 여성학에 대한 책이 없는 것도 의아하다. 어쨌거나 설 연휴엔 언젠가 읽으리라 별렀던 책 한권쯤 독파해볼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