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 시인 > 1월 ○○일.실로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동창회장이 올해가 졸업한 지 30년이 되는 해라며 여러 차례 연락을 해왔다. 선생님들도 모신다는 것이었다. 토요일 오후,인천의 한 관광호텔 지하 뷔페.십수년 만에 만나는 얼굴에서부터 정말 30년 만에 처음 보는 친구와 선생님들도 있었다. 사실 동창회에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서울에서 가까운 시골 중학교 출신들.개중에는 땅부자가 많았다. 동기들 가운데 나처럼 소 팔고 땅 팔아 대학을 나온 경우는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학을 나온 월급쟁이들이 제일 가난하고 전망이 없는 축에 낀다. 아버지가 물려준 땅 덕분에 '시커먼 큰 차'를 모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직장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의 근황도 물어보지 않았다. 누구는 벌써 죽었거나,또 누구는 명예퇴직을 했거나 부도가 났으리라.4학년 7반(요즘은 47세를 이렇게 표현한다)이면 삶이 크게 커브를 틀 때다. 지나온 삶과 살아갈 삶이 도무지 같지 않다. 경계의 시절이다. 대체 이 사태는 누구 탓인가. 1월 ○○일.동창회 뒤끝이 뒤숭숭하다. 교감선생님께서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며 축사를 마쳤을 때 한 녀석이 농담 비슷하게 털어놓은 말."여기 모인 애들 땅값을 합치면 몇 조원은 될 거야".땅이 없는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동창회에서 나는 많이 참은 것 같다. 노래방에 가서도 나는 애써 옛이야기만 고집했다. 나는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요즘 들어 힘과 용기에 대해 민감해진다. '힘과 용기의 차이'라는 작자 미상의 시가 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져주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4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용기가 절실해진다. 용기가 있었다면 땅부자 친구들 앞에서 나는 아주 유연했으리라. 2월 ○일.휴대전화 화면을 딸아이 얼굴 사진으로 바꿨다. 딸애가 필리핀으로 어학 연수를 떠난 지 꼭 한 달이 됐다. 아내가 아는 사람을 통해 학교를 소개받고,비자를 얻고,비행기 표를 끊을 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막상 딸애를 보내고 나자 어쩌면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그곳에서 학업을 계속한 뒤 외국에서 직장을 잡고 또 외국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맏딸을 결혼시키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는 아버지들을 갑자기,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를 열 때마다 딸애가 '아빠,힘들어 하지마'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나는 힘이 있어야 한다. 2월 ○일.오전 간부회의에서 '깨졌다'.임금 협상 시기인데 간부로서 평사원들을 설득하기는커녕 동조했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존경하던 상사가 사표를 던지기 직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후배들의 노동력에 빌붙고 싶지 않다고.그 때가 막 명퇴자들이 속출할 때였다. 후배들을 바로 보기가 힘들다.내가 후배들을 다그치면 저 혼자 살아남기 위해 저러는 것이라고 할 테고,무심하게 굴면 능력도 없는 것이 아직도 붙어 있다고 할 것이다. 나는 경계인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힘이,사랑받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나는 힘도 없고 용기도 없다. 2월 ○일.40대 중반에 퇴직을 하고 평균 연령까지 사는데 8억원이 든다는 얘기를 들었다. 앞으로 30년을 더 사는 데 8억원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 학비나 결혼자금은 포함되지 않은 액수일 터.생명보험과 국민연금 말고는 재테크라곤 하나도 없으니 아,나는 시인입네 하면서 정말 이슬만 먹고 살았구나. 며칠 전 중학교 동창회에서 영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문재,너 시인 냄새가 풀풀 나는구나".혹시 그 냄새가 궁핍의 냄새는 아니었을까. '홀로 서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힘과 용기가 동시에,그것도 많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힘과 용기 사이에서 어지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