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東根 < 명지대 교수ㆍ경제학 > 부패는 특수이익의 추구를 위한 '사적결탁'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패는 공정한 게임 규칙과 공적 신뢰를 파괴하는 반문명적 행위로서, 궁극적으로는 그 사회의 부를 축소시킨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부패국가의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04년 부패지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부패순위는 1백46개국 중 47위이며 OECD 30개국 중에서는 23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만을 놓고 볼 때 대만 말레이시아 등에 뒤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패청산을 외쳐왔음에도 부패가 크게 개선되지 못한 건 부패문제를 사정(司正)을 통해 접근하려 했기 때문이다.사정은 표적사정의 시비를 낳음으로써 정파의 이해를 초월한 반부패정책이 일관되게 시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부패 '억지'보다 부패 '척결'을 내세운 것도 부패를 단칼에 끊어내겠다는 조급성을 드러낸 것이다. 부패문제에 있어 쾌도난마(快刀亂麻)란 있을수 없다. 부패를 진정으로 억제하기 위해선 '인적청산'과 '통제기구' 중심의 정책관행을 바꿔야 한다. 부패는 사회심리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부패를 억지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정직과 원칙을 택하도록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의식개혁을 위한 '반부패사회협약'은 일정부분 공감이 간다. 만약 개인이 완전한 '도덕감정'을 가질 수 있다면 부패는 발생하지 않지만 이는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협약은 선언적 의미를 가질 뿐이다. 또한 부패는 경제행위이기 때문에 부패행위의 기대손실을 높여 부패의 유인을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통제강화를 통해 부패행위의 기대손실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부패의 여지와 틈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부패의 여지'를 줄이는 것이 우회적이지만 효과적인 반부패정책인 것이다. 부패수준을 낮추려면, 부패는 시장경제의 고유 속성이 아닌 오히려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이 억압됐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부패는 남의 재산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생길 개연성이 높다. 자기가 자기 재산을 관리한다면 부패가 생길 이유가 없다. 타인의 재산을 관리하다 보니 재산의 진정한 주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챙기게 되고 그것이 부패가 된다. 시장경제체제는 기본적으로 자기 재산을 자기가 관리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부패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재산권의 명확한 보호는 부패의 틈을 줄여준다. 예컨대 소수주주권의 신장은 금융부패를 줄여 기업투명성을 제고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부패는 정책이 '원칙'이 아닌 '편의'를 추구할 때, 즉 계획된 질서를 위한 규칙체계가 남용될 때 발생된다. 예컨대 인·허가 등으로 재산권 공급을 제한하면 허가를 따내는 것 자체가 재산적 이익이 되기 때문에 인·허가 과정에서 돈이 오가게 된다.따라서 관료행정 국가일수록 권력 집중과 재량권 강화를 가져와 부패를 촉발한다. 한편 시장경제는 민간의 사(私)영역이 국가권력으로부터 구획되는 체제다.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는 따지고 보면 민간의 사영역이 정치권력으로부터 구획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발된 것이다.부패를 줄이려면 민간의 사영역을 정치권력으로부터 지켜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의 초점이 정책함수에서 '경제관계'와 '시장과정'에 맞춰져야 한다. 결국 시장경제체제를 온전하게 발전시키는 게 장기적으로 부패의 여지를 줄이는 길인 것이다. 집권세력에게 '사정의 칼'은 뿌리치기 쉽지않은 유혹일 수 있다. 그리고 부패척결 구호는 일반대중의 여론동향에 부합되기 때문에, 반부패정책은 부지불식간에 대중주의(populism)로 흐를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아 부패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경제자유를 누리는 국가,시장경제체제가 온전하게 정착된 국가의 부패수준이 낮다는 것은 경험적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반부패 정책은 보다 '긴 호흡'으로 시장경제체제 정착을 위한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dkcho@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