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 수철 도슨(Toby S.C. Dawson.26)'


부산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에 의해 버려졌다가 3살 때 미국 가정에 입양돼 프리스타일 스키 모글 월드컵 종합 2위를 하는 등 이 부문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성장한김수철의 얘기가 워싱턴 포스트 24일자 스포츠면 2개면에 걸쳐 상세히 소개됐다.


성장기에 정체성 혼란을 겪으면서 다른 미국 아이들과 똑같은 미국 아이가 되기위해 한국 얘기를 의식적으로 피했으나, 이제 미국인으로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한국도 포용하게 된 전형적인 한국인 입양아의 성장 진통이 그려져 있다.


도슨은 지난 2월 경기도 이천 지산리조트에서 열린 2004 프리스타일 스키 모글선수권대회에도 참가했었다.


다음은 기사 요지.


『도슨은 자신의 중간 이름 `S.C.'가 `너무 멋진(So Cool)'이라는 뜻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지만 실제론 부산 고아원에서 6개월 동안 살 때 얻은 이름이다.


3살도 채 안돼 경찰서 앞에 버려졌던 그는 고아원을 거쳐 미국의 스키 강사 부부에게 입양돼 콜로라도주 베일의 눈덮인 산악지대에서 새 삶을 얻었다.


입양된 후에도 수개월간 도슨은 매일 밤 한국말로 "엄마"를 부르며 깨어나 울었다.침대가 무서워 마룻바닥 깔개위에서 양엄마를 껴안고 잠잤다.


도슨은 연약하고 겁많은 아이였으나 스키를 탈 때만은 달랐다.양아버지인 마이크 도슨이 수철을 집에 데려온 이튿날 수철을 가슴에 묶고 슬로프에 나갔을 때 "그애는 고개를 빼들고 바람을 맞으며 즐거워했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22년, 26세의 토비 도슨은 프리스타일 스키 모글의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자라났다.


지난해 월드컵 종합순위 2위를 기록하고 역시 2위로 올 시즌을 시작한 도슨은 "매우 행운아였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그 행운을 계속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철이 1982년 3월 덴버의 오래된 스태플턴 공항에서 보호자의 손을 잡고 비행기를 내리기전 도슨 부부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쌀밥과 과자를 좋아하고잠을 잘 자며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논다는 것, 그리고 바짓가랑이가 말려올라간옷차림에 빡빡 깍은 머리로 유난히 귀가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의 사진 한장이 전부였다.


양엄마 데보라는 스키 강사 일도 그만두고 수철을 돌보는 데만 전념했고, 도슨부부는 수철이 외로울까봐 1년 뒤에 K.C.라는 이름의 한국 아이를 또 하나 입양했다.


K.C.는 활달한 성격이었으나 수철은 사람들이 모인 곳을 싫어하고 양엄마에게만매달렸다.


수철, 곧 토비 도슨은 자라면서 자신의 출신배경을 의식하게 됨에 따라 점점 더내성적이 돼 갔고, 더 나이가 들어서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려할 때 자신에게 쏠리는시선을 느끼고는 침묵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콜로라도주 울프 크릭의 프리스타일 스키 캠프에서 전화통화를 한 토비는 "나는(한국 뿌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냥 정상적인 아이가 되고 싶었다.


내 친구는모두 노랑 머리에 파란 눈이었고, 나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일의 눈덮인 산에선 달랐다.


4살 무렵 이미 엄마가 끌어주는 아기용스키를 타고 작은 슬로프를 내려오고 있었다.


모자는 1주일에 4-5일을 하루 종일 스키를 탔다.


도슨은 6살 때 알파인 경주에나가기 시작하고, 베일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에서 미국의 유명 스타 선수들과 아버지가 경기하는 것을 지켜봤다.


도슨은 "항상 더 타고 싶었다. 계속 슬로프를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산꼭대기에서 그대로 내려오는 것은 밋밋해서 싫었다.


9살 때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던 스키어들이 환호를 보내는 가운데 약 6m 높이의 낭떠러지를 질주,발아래 슬로프로 활강하기를 즐기기도 했다.


도슨은 18세에 처음 미국 대표팀 후보가 됐고, 1999년 처음 월드컵 대회에 나갔으나 미국 대표팀 유니폼이 편안하게 느껴지기까진 수년이 걸렸다.


경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 아니라 인종 문제였다.


국가대표팀 자리를 바라는다른 아이들이 자기때문에 기회를 빼앗겼다고 보고 자신에게 적개심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100% 미국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전에는 그런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토비는 말했다.


도슨의 이런 정체성 혼란과 좌절감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양부모는 두 한국인 아들에게 출신배경을 솔직하게 얘기해주고 두 나라 문화를 다 체험토록 해줬다.


마이크 도슨은 "우리는 애들에게 `너희들의 뿌리를 잊지 말라. 너희들은 이곳미국과 한국, 두 곳에 뿌리가 있다'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도슨 가족은 이따금 덴버까지 가서 한국 시장에서 아이들이 한국 식성을 버리지못하고 맛있게 먹는 김치, 국수, 김, 그리고 매운 것은 어떤 것이든 한아름 사거나,한국인 아이들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으며, 수철이 7살 때는 한국식으로 생일잔치를열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K.C.는 자신의 입양 과정에 대해 알고 싶어했지만 수철은 항상 "엄마,이제 그만 들어도 돼?"라며 이런 대화에서 빠져나가고 싶어했다.


지난 수년간 토비 도슨은 한국을 많이 다녀왔다. 그는 이제 그동안 외면했던 것들을 포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말도 조금 배웠다. 언젠가는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게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또 입양가족을 위한 한국전통캠프 상담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과 똑같은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의 적응 고통을 덜어주는 데 열심이다.


그는 지난해 미국 모글 챔피언 제레미 블룸을 제쳤고, 지난해 시즌 월드컵에서핀란드의 위대한 모굴 스키어 얀 라텔라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그에 1년 앞서선 세계선수권전에서 동메달 2개를 땄다.


2002년 동계 올림픽 국가대표팀에서 아슬아슬하게 탈락한 도슨은 2006년 동계올림픽을 내다보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윤동영 특파원 ydy@yna.co.kr